문영진 사회복지법인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법인 행사 마지막 날 소낙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한참동안 내렸다. 오후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이런 걱정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비가 그치면서 햇살과 함께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정도의 가을바람은 그리 차갑지도 않으면서 기분 좋게 내 살갗에 닿았다. 데크길을 걷다가 일렁이는 파도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백수 해안도로의 아름다운 절경을 눈에 담았다.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선물해 주는 가을. 이런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른 계절에 비해 유독 짧다는 느낌이 든다. 무더운 여름을 이겨낸 햇볕 잔뜩 머금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여름 것들을 정리하고 겨울 채비에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분주한 이때, 잠깐 동안만 볼 수 있는 색 짙은 가을풍경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유독 마음이 바쁘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지금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한 물음에 많은 분들이 단연 1순위로 여행을 꼽았다. 코로나가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일상의 답답함과 무료함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여행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어디를 여행하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누구와 여행하는가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 정읍, 장성 등지를 버스와 기차를 타고 어머니와는 여기저기를 다녀봤는데 아버지와 다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3남매 키우면서 농사일밖에 모르셨던 아버지가 어린이날을 맞아 광주 사직동물원을 다녀오자는 말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런 아버지와의 첫 여행의 느낌은 엊그제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본다는 설렘보다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직동물원 나들이가 부모님과 우리 3형제의 첫 번째 여행으로 기록되는 날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보면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 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런데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몸이나 생각은 머물기보다 움직이고 이동해야 힘이 생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시공간의 이동인 여행을 선택하는 것 같다.

여행을 통해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을 지낼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버지가 올해로 팔순을 맞이하신다. 올 가을, 아버지와 가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동생들 내려오면 케이블카 한번 타자는 말씀을 작년에 하셨는데 코로나 상황 등 여러 가지가 여의치 않아 미루어 왔었다. 당신께서 먼저 여행을 다녀오자고 하신 것이 초등학교 이후 2번째인 것 같다.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 있으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고픈 부모님 마음.

짧은 가을 안에 부모님의 마음을 또 하나의 추억으로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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