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시 한 줄을 장식하기 위하여/꿈을 꾼 것이 아니다./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내 손바닥에는/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헨리 데이빗 소로우)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울림이 있는 성찰이 담긴 불멸의 책,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덮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깨끗하다는 말로는 부족할만큼 청명한 쪽빛 하늘 아래 풍성한 소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기가 가을 바람을 타고 코 끝에 아린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몸 속의 탁한 공기를 전부 빼내고 풋냄새 나는 새로운 공기로 가득 채우려는 듯 깊이 숨을 들이킨다. 상쾌하다.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수의 통나무집 만큼 외진 곳은 아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삶에 충만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1845,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에 소로우는 문명 세계와 단호히 결별하고 홀로 집을 지어 숲 속 생활을 시작했다. <월든>은 호숫가 숲에서 지낸 2년간의 생활을 기록한 것인데, 소로우는 이 단 한권의 책으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수 많은 리더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고 미국의 작가 화이트는 모든 대학에서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씩 주어 학생들을 내보내자고 말하기도 했다. 도시화, 기계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동경하게 된다. 물신의 시대, 인류가 태어난 이래 지금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시대도 없었건만, 이 무시무시한 세계를 창조해 낸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연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다리가 휘청거릴 때도 자연의 품을 그리워한다. 자연에의 동경,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태어났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겨나는 감정일 것이다. 소로우는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논하는 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자연을 동경하는 것과 자연적으로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자연을 동경한다면서도 매일 축구장 크기의 수십배에 달하는 밀림을 불태워 없애고, 대도시 가장 높은 곳 비싼 아파트에서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고 싶은 욕망에 물든 이율배반적인 존재가 인간이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자연적인 삶'이라는 것, <월든>에서 소로우는 자연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먼저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해지라고 충고한다.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다는 거리의 개념은 아니다. 설사 도시에 살더라도 자연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다. 더 간소하고 더 소박하게 더 너그러운 삶을 사는 것. 자연적인 삶이란 오지 않은 영원을 갈망하기 보다는 해와 달과 바람의 향기와 우리를 둘러싼 진실을 담고 있는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소로우의 충고가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내가 급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과 공생하고 삶에 '생태'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그동안 누려왔던 문명의 편리함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불편함을 무릅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노력은 머리로만은 되지 않는다. 시골에 살면서 ', 내가 이 정도로 자연과 생명에 무딘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낄때가 많다. 생태적 감수성이 메말라 있다면 일상 생활을 생태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익숙한 편리함에 쉽게 타협하거나 가치와 생활이 괴리되는 모순도 적당히 합리화하게 된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 왔다.(중략) '자발적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업, 상업, 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중략)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월든중에서)

20대 후반을 <월든> 호숫가 숲속에서 보내고 4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소로우.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이는 "이처럼 행복한 죽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단다. 다시 심호흡을 해 본다. 인류가 해 온 모든 질문의 해답마저도 품고 있는 듯 한 자연의 미소를 닮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최후의 순간에 소로우처럼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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