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풍년이 들면 너도 나도 모두 좋았던 시절풍년농사 되시라는 덕담이면 인사로는 제일이었던 그 시절이 왜 그리워질까?

풍년 뒤에 찾아오는 농산물 가격 폭락, 각종 재해 등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결국 풍년이 와도, 흉년이 와도 농가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이 악순환을 외면한 채 농업인들의 희생을 토대삼아 OECD 국가에 진입한 이 나라가 이제 좌우를 둘러보고 소외된 국민들을 아우르며 분배의 정책을 펴야 할 시점에 농산물 가격이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범인양 인식하는 물가당국의 잘못된 편견은 농촌의 붕괴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식량안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국민의 주식인 쌀의 경우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쌀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이 점차 늘어나 이제는 408,700톤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도록 되어 있어 국내 쌀 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다.

과잉재배에 따른 생산량 증가는 정부에서 농산물 수급과 적정가격을 지지하는 제도와 대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로쌀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정부의 타작물재배 정책도 현재는 유명무실하다.

농산물 생산은 자연조건과 기후 변화, 각종 병충해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국가적 생산지원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가격의 폭등과 폭락 현상이 반복되고 농산물 품목 쏠림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매년 농산물 계약재배 계획생산을 통해 생산비보장을 건의 드린바 있으나 정부에서는 의지도 없고 소귀에 경 읽기이다. 그 이유는 정부 입안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국민들 생활과 밀접한 농산물 가격이 현저히 높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

최근 국가살림과 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분께서 서울에 위치한 농협 양재점을 찾아 쌀값이 생산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생산량 증가 효과가 가격에 충분이 반영되도록 수급관리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즉 쌀값을 더 낮추겠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직에 있는 분께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참으로 서운하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잘 아시겠지만 2021년 쌀 생산량은 3882천톤으로 전년의 3507천톤 대비 10.7% 증가하여 국회, 농민단체, 농협에서는 전 방위적인 쌀 시장격리를 촉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쌀값 추이 등 시장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현장의 여론과 괴리된 원론적인 견해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쌀 목표가격과 변동형 직불금을 폐지하면서 개정한 양곡관리법에 자동시장 격리제도를 도입했다. 양곡관리법에서는 초과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 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 초과분을 시장 격리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소비지 쌀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잉여 곡에 대한 시장격리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는 사이 현재 소비지 쌀값은 계속 하락하여 도매가 기준 20kg 한가마니에 45,000원 선까지 거래되고 있고, 산지에서의 조곡가격 또한 끝없이 하락을 거듭하여 수확기 68,000원선에서 거래되던 조곡 가격은 일부 농협 및 민간업자들이 40kg 한가마당 61,000~62,000원씩에 매입한 후 저렴한 가격에 출하하여 언제 60,000원선이 붕괴될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수확기 영광군농협 통합 RPC에서는 농민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수확기 쌀값 안정을 위해 68,000원을 기준 가격으로 매취수매 실시하여 광주, 전남·북에서는 제일 높은 수매가를 유지함으로써 쌀 수취가격 지지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쌀값하락은 예년 동기 쌀 판매량의 50% 이하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져 더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현재 RPC 가격은 신동진 67,000, 새청무 등 66,000원으로 시장가격과 최소 1,000원에서 최대 5,000원의 많은 가격 차이가 있다. 당장 시가에 합당한 가격으로 인하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가 입장을 고려하여 추가 가격인하를 결정하지 못하고 정부대책만 기대하고 있는 등 진태양난의 위기에 빠져있다. 더욱이 RPC 운영 10여년 만에 적자운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 수확기 산물 벼 수매량은 202016,719톤에 비해 10,010톤이 많은 26,729톤을 수매하였다. 또한 보관시설 부족으로 인한 초과 물량 2,500톤을 공장 부지에 야적을 하고 있는 실정이나, 이마저도 계속되는 판매부진이 누적되어 적정 여석을 확보 못한 상황에서 건조벼 수매를 요청하는 농가들의 입장을 생각할 때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대량 거래처는 포대 당 200~300원 차이로 거래가 좌우된다. 판매가를 내릴 경우 적자폭이 너무 크고, 판매가를 고수할 경우 추가수매를 엄두로 못 낼뿐만 아니라 기존 거래처 이탈로 이어지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임에도 인내하면서 버티는 이유는 금년이 변동형 직불금이 없어지고 새롭게 쌀 가격이 조성되는 첫 해 이기에 여기서 65,000원 선이 무너질 경우 추곡가는 다시 10년 전으로 회귀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쌀값 하락은 정부가 정부양곡 방출로 자처한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2020년산 쌀 생산량 감소로 인한 시장 재고 부족 등을 이유로 정부양곡 37만톤을 도정업체 공매를 통해 시장에 방출했다. 그러면서 쌀 생산량 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은 외면하고 정부매입 발동기준에 적합함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보면서 왜 이토록 농민들한테만 가혹한지 묻고 싶다.

사실 농산물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쌀 뿐만이 아니다. 고추는 근당 6,500원 선까지 하락했음에도 비축수매를 외면하고 있고, 마늘은 시세가 조금 높다고 해서 저율관세할당(TRQ)으로 10,000톤을 수입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농협 고춧가루 공장도 고추가격 하락으로 75천만원 정도의 손실요인이 발생하는 등 농산물로 인한 피해는 농민과 농협에 고스란히 전가 시키면서 물가타령만 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지켜보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수요초과 물량을 매입하는 등 선제적 시장격리를 통해 더 이상 농가피해가 발생하지 않토록 빠른 조치를 바란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