芝堂 이흥규 시인

홍농읍 봉대산 줄기가 칠암폭포 뒷산에서 남쪽으로 벋어 내려 뭉쳐있는 산은 칠암마을의 오른쪽 능선인데 이 산은 칠암저수지 북쪽 산으로 아주 가파른 등성이가 급하게 벋어 내려오다가 우뚝 서 있는 모양이다. 이 산등성이는 마치 호랑이가 봉대산 숲속에서 튀어나오는 형국인데 이를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용맹스러운 호랑이가 숲을 뛰쳐나오는 형국) 명당으로 본다. 이 자리에 홍농읍 단덕리 단지동 출신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2)를 지낸 이석령(李錫齡1652-1733)의 묘가 있다. 그의 아들은 호조판서(工曹判書) 양무일등공신(揚武一等功臣) 봉작(封爵)을 받은 이중경(李重庚 1680-1757)으로 명당의 발복이 당대에 나타났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머니! 오늘은 대궐에 안 가셔요?”

날이 새기만 하면 대궐에 가자고 졸라대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방금 중궁전의 나인이 왔다가 가는 것을 본 아이가 어머니께 여쭙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궐에 가고 싶니?”

, 이모님이신 중전마마도 뵙고 이모부인 임금님도 뵙고 싶어요.”

이제 네 살 난 아이는 제법 어른스레 투정을 부린다.

그래, 오늘은 중전마마의 연락을 받았으니 입궐해야겠다. 너도 데리고 갈 테니 이 옷으로 갈아입어라.”

공조판서 중경(重庚)의 내당(內堂)인 서씨(徐氏) 부인은 네 살 난 둘째 아들 장오(章吾)의 손을 잡고 대궐로 향한다.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를 만나 뵙기 위해서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692(숙종 18) 127일 가회방에서 태어났다. 1694년에 태어난 영조 대왕보다 2세 연상인데 13세가 되자 숙종의 왕자로 11세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리고 달성군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성왕후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손위 언니의 둘째 아들인 장오를 보면 친아들 이상으로 귀여워하였다. 그래서 귀염을 부리는 조카가 보고 싶어 달포가 멀다 하고 언니를 대궐로 불러들였다.

그래서 장오는 자연히 영조 대왕을 뵙는 기회가 많았는데 큰아들(사도세자)을 미워하는 왕이지만 멀게는 왕손이며 가깝게는 이질이 되는 장오를 영조 대왕도 무척 귀여워하시며 무릎에 앉히고 볼을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장오는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임금님의 무릎 위에 앉아 재롱을 부리는 천하의 귀염둥이였다.

그날도 장오는 임금님 무릎에 앉아 귀염을 떨어댔다.

허어! 이 녀석 참으로 영특하게도 생겼다.”

임금님은 장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임금님 무릎에 앉아 용포를 어루만지던 장오가 임금님 용안을 빤히 올려다보더니

상감마마, 이 옷은 무엇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보드랍고 예쁘옵니까?”

하고 재롱을 떨며 여쭙는다. 이에 영조는

이 옷이 네 눈에도 좋게 보이느냐?”

, 저도 이런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고 싶어요.”

하고 망설이지도 않고 즉답을 드린다. 영조는 이 아이가 귀엽고 영특한데 어디 얼마나 지혜로운가 보자 하고는 내시를 불러 가장 좋은 비단 한 필을 가져오라 이른 후,

장오야, 이 비단을 너에게 줄 터이니 가지고 가거라. 꼭 네가 가지고 가야지 다른 사람을 시켜서는 아니 되느니라.”

하고 엄명을 내린다. 네 살 난 아이 힘으로는 이 비단 한 필을 도저히 가지고 갈 수는 없는 무게다. 어린 장오는 두 손으로 들어도 보고 이리저리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묶여있는 끈을 풀고는 비단 한 끝을 손으로 꽉 움켜쥐더니 질질 끌고 가는 게 아닌가. 그러자 둥글게 말렸던 비단이 풀어져 장오의 꽁무니를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며 끌려가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왕과 중전 그리고 시종들은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였다고 한다.

이 아이가 자라서 56장의 첫 장수가 되는데 그가 바로 이란 장군의 6세손 이장오 대장이다. 중경의 둘째 아들인 장오 대장은 좌우 포도대장과 판의금부사, 형조판서를 역임하며 왕의 측근으로 임금을 가장 가깝게 모시며 대궐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연이어 5세에 6장신(六將臣)이 배출된다. 즉 장오(章吾)로부터 시작하여 아들 득제(得濟-좌우 포도대장, 형조판서) 큰손자 석구(石求-삼도통제사, 좌우 포도대장) 둘째 손자 철구(鐵求-좌우 포도대장, 금위대장) 증손자 경우(景宇-어영대장, 훈련대장,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고손자 봉의(鳳儀-좌우 포도대장, 형조판서, 판돈령 원수)로 조선 후기 200여 년 동안 역대 왕들의 최측근으로 대궐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며 권력의 핵심에 머물러 맹호출림형의 명당 발복을 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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