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너무나 일반적인 상식이고 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를까?"

지극히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어리석은 질문, 비상식적인 궁금증이 없었다면 과학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의 문명 또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왜 사과는 가지를 떠나면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꼭 땅으로만 떨어질까?"

일반인들이 당연시했던 현상에 대해 아이작 뉴턴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할 줄 알았기에 그 위대한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함을 의심할 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늘 만나고 부딪히는 현상들이나, 행위 등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 그런 것들에 대한 일말의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때로는 삶이 권태로워지고 시들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당연한 것들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미래에 당연함을 위하여.

물을 아래에서 위쪽으로 흐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일을 하면서 어려움에 봉착 하다보니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선의 밑바닥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어드니 부상(浮上)을 하지 못하고 방치 된 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그 어선은 뒷쪽부터 서서히 갯벌 속으로 묻혀들어 앞 부분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재질이 플라스틱(F.R.P)이라서 썩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들어난 부분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래, 저걸 꺼내서 약간의 수리를 하면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겠구나.”

금년 1월부터 삽 한 자루로 어선 주위의 갯벌을 파내기 시작했다. 20여일의 사투 끝에 드디어 묻혔던 부분이 드러났다.

제방으로부터 약 15m정도 떨어져 있었으므로 단단한 줄로 선채를 묶고 크레인을 불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갯벌 속에서 꺼내 제방(도로) 옆에 까지 끌어당겼다.

보수 작업을 하기 위해 들어 올려서 작업장(월평항 선착장)으로 싣고 가야 한다.

그러나 5톤 규모의 카고크레인이 들어 올리려 해도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채 내에 갯벌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삽 한 자루에 의지해서 선 채 내에 퇴적된 약 3톤 정도의 갯벌을 파냈다. 그 작업은 장난이 아니었다.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드나들며 선채 내부에 가득 채워진 갯벌을 파내기 위해 갑판의 절반 정도를 잘라냈다. 그 작업만 하는데 또 20여일이 소요되었다.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다시 크레인을 불렀다. 배는 가볍게 들어 올려져 차에 싣고 작업장으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수작업만 남았다.

점검을 해보니 선채는 예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다. 골조는 마디마디 금이 가거나 골절이 되었고, 밑바닥은 별로 성한 곳이 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리를 하려 하니 차라리 같은 규모의 중고 선박 한 척을 구입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투자한 노동력과 시간이 얼마인데"

다시 크레인을 불러 배를 뒤집어엎었다.

대대적인 복원 수술의 시작이다.

갖가지 보수 재료들을 사다가 끊어진 곳은 연결하고 구멍 난 곳은 메꾸고, 떨어져 나간 곳은 덧붙이고, 페인트로 깔끔하게 덧칠까지 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다시 크레인을 불러 배를 바로 세우고 개펄을 파내기 위해 절단을 한 갑판에다 용도에 맞도록 하우스 제작을 했다.

그러고 나니 원래의 모습보다 더 활용도가 높은 기능을 갖추게 되었고 외형도 근사해졌다.

그 모습을 보니 겨울 한 철을 추위와 싸우며 노력했던 그동안의 피로감이 봄 눈 녹듯이 풀렸다.

이제 진수(進水)를 하기 위해 선채 내부에 물을 부어 넣고 누수(漏水) 확인을 했다.

다행히도 수리는 잘 된 듯 했다.

"이제 이삼일 후면 배를 띄우고 대망의 출항을 하리라."

일종의 자부심과 희열 그리고 보람된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 선창으로 달려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출항을 기다리는 그 폐선의 부활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점검을 하는데, 아뿔싸!

선 채 밑바닥에서 좁쌀만 한 물방울이 약5분여만에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늘구멍만한 공간을 통해 선채 내부에 고였던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 누수 방지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순간 접착제로 그 구멍을 막았다. 막히지 않았다.

석면가루에 강력경화제를 섞어 주변을 두툼하게 발랐다. 역시 소용이 없었다.

이미 갑판 위에는 하우스가 만들어진 상태라 다시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난감했다.

방수용 본드, 강력테이프, 수중 실리콘 등 그 어떤 방수제로도, 위에서 아래로, 5분에 한 방울 정도 떨어지는 그 좁쌀만 한 크기의 물방울 하나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 작은 물방울의 힘이라니

"물이 아래서 위로 흐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간단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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