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남-도안

옛말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게 있다. 당나라 때 관리를 뽑을 때 사용한 네 가지 표준으로 신수(身手-몸과 외모), 언사(말씨), 문필(글씨체), 판단력 등을 말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보게 마련이다. 외모 지상주의가 도를 넘어 성형수술까지 하는 시절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리요마는, 철학자들의 외모 역시 우리가 늘 궁금하게 여기는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외모와 관련하여 유명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이다. 못 생긴 얼굴에 땅딸막한 키, 불거진 배,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에 거친 피부까지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추남이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기분 나빠 하기는커녕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로 받아넘기기까지 하였다. 자기 눈은 사방을 잘 볼 수 있도록 툭 튀어 나왔으며, 길고 똑바른 코보다 뭉툭한 코가 냄새를 더 잘 맡는다고 익살을 떤 것이다. 이러한 여유가 위대한 철인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동진 전진(前秦) 시대의 고승이자 번역가인 도안(道安, 312-385) 역시 그 외모가 소크라테스에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도안의 집안은 명문가였으나, ‘영가의 난을 만나 유요의 군대에 의해 부친이 죽고 말았다. 영가의 난(永嘉)이란 중국 서진(西晉) 말기인 영가년 동안(307312) 흉노가 일으킨 큰 반란을 가리킨다. 이때 산시성(중국 중서부에 위치) 일대에 옮겨 살고 있던 흉노 부족의 족장 유연(劉淵)팔왕(八王)의 난(황실 내부의 실력자 8명이 권력투쟁을 벌이며 일으킨 난리) 후에 중국이 혼란해짐을 틈타, 나라 이름을 한()이라 정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 후 그의 아들 유총(劉聰)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뤼양(낙양)을 함락시켰다. 그리하여 서진이란 나라가 망하고 ‘516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516국 시대에 유요(劉曜, ? ~329)라는 인물이 오촌 당숙뻘이 되는 유연의 손에 키워졌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유요는 319년 수도를 장안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에서 ()’로 바꾸었다. 이러한 난리 통에 부친을 잃은 도안에게 또 하나의 비극은 네 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이 도진 때문이다.

이리하여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도안은 사촌형님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영리하여 이미 일곱 살 때 서당선생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그가 열두 살 되던 해에 나라의 조정에서는 전국에서 천재 아동들을 뽑아 승려로 키우고자 하였던 바, 도안은 여기에 뽑혀 불교에 입문하였다.

그런데 도안의 스승은 그가 못생긴 것을 보고 그를 매우 차갑게 대했고, 날마다 밭일만 시켰다. 그러나 도안은 이에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한편으로, 꾸준히 불교의 경전들을 읽어나갔다. 3년 동안 적지 않은 불교 서적을 독파하기에 이르자 그때야 스승은 그의 재능을 인정해주었다.

못생긴 천재 소년도안은 마침내 불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중국의 제 1인자가 되었고, 또한 중국과 인도의 사상을 융합한 최초의 선구자가 되었다. 나아가 그는 모든 승려는 석()씨를 성()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후세에 그대로 지켜지게 하였다. 또한 그는 미신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불교를 철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마라습은 그를 동방의 성인(聖人)’이라 부르기도 하였다.(저서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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