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일상이듯이, 달마다 되풀이 되고 계절별로 되풀이 되고, 해마다 똑같이 되풀이 되는 삶의 형태들이 있다.

4월이면 수선화, 진달래, 목련, 벗꽃, 배꽃, 시과꽃, 매실꽃 등 온갖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고, 그런 환경들을 배경으로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 올라 저 먼 곳을 바라보며, “4월의 노래를 부르고 지난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쥐불놀이로 불태운 논두렁의 까만 잿더미를 뚫고 새순처럼 올라온 삐비를 뽑아 까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 보드랍고 달콤한 맛에 전신에 신선한 피가 돌고 그 활력으로 동시 한 편과 잊혀진 시 한 편이 저절로 되뇌여진다.

 

아무리 보아도

고운 실인데

옷부터 촉촉히 젖어든다.

아무리 보아도

색깔은 없는데

온 들에 연두빛 물이든다.

ㅡ공재동 봄비 전문 ㅡ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 나아가 보니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 찔림없는 아픈 나의 가슴 !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ㅡ변영로 봄비 전문ㅡ

시처럼 아 ㅡ소리 없이 보슬비 내리는 창가에서 불러보는 그립고 소중한 이름들이여!

겨우내 검푸른 상록수로만 무겁게 채색되었던 산은 산대로 낙역수들의 마른 가지마다 연둣빛 새 순이 돋고, 그 사이사이에는 산벗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마치 그림 속 도원경 같은 모습들을 연출해냈다.

바다에선 추위에 밀려 심해로 빠져나갔던 꽃게, 병어, 농어, 민어, 조기...등 온갖 회기성 어류들이 연안으로 돌아오면서 어부들은 출어 준비에 바쁘고 밤새도록 어둠을 찍어대는 두견새 소리와 한 낯의 나른한 뻐꾸기 소리는 까닭 모를 서러움과 그리움을 자극한다.

온갖 생명들의 몸부림으로 분주한 4월은 또 지방자치제 확대 실시 이후 4년마다 주기가 돌아오는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되는 달로 거리마다 건물마다 입후보자들의 사진과 홍보 현수막이 내걸리는 계절이다.

천직의 숙명으로 볍씨를 담그고, 고추를 심고, 각종 씨앗을 들이는 농부들도 바빠지는 계절에 불러보는 이별의 노래.

雨歇長提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언덕 위에 풀빛은 푸르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의 눈물 보태는 것을

포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의 푸른빛이 더욱 짙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은 시적 화자의 슬픈 이별과 대조되어 이별의 애달픔을 더욱 고조시킨다. 자연사와 인간사의 대조를 통하여 이별의 정한(情恨)을 심화 ·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이 그리워 흘리는 눈물 때문에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이별의 정한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는 대동강 물결이 이별의 눈물과 동일시되어 슬픔의 깊이를 확대하는 시상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때의 눈물은 중의적 표현으로 이별하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기도 하고 내가 임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흘린 눈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하여 시적 화자는 일방적인 자기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나 인간 보편의 이별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다.

4월은 그렇게 온통 환희에 찬 생명의 몸부과,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과 노래가 긴 강물의 흐름으로 여울지는 그런 계절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