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연 재광 향우·영광군 염산면 출신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풍요로운 내 고향 영광 염산에 갔다. 광주 상무지구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 너머 들판에는 청록색의 보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고향에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부모형제와 살았던 정든 곳이고, 그리움과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하는 곳이다. 연두 빛 들녘을 보며 운전하다 보니, 어느 사이 고향 마을 미동에 도착한다. 저수지 뚝 아래 공터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부모님 산소로 올라가서 성묘를 하였다. 성묘 후 묘지 주변의 잡초와 나무를 전지 작업을 했다. 묘지 뒤 언덕에는 노란 개나리 묘목을 심었다. 입구에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해바라기 꽃도 심었다. 꽃이 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산소에서 내려와 정다운 마을,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부모형제와 같이 살았던 옛집으로 갔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서 부모형제들과 모여앉아 참외를 먹었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 오순도순 훈훈한 정을 주고 받으며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었다. 여름 방학이면 임한복, 한경택, 임장춘 등 친구들과 산과 들로 여치와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고, 겨울 방학이면 딱지 치기를 하고, 꽁꽁 언 논의 얼음위에서 썰매를 타고 놀던 행복한 곳이다.

성인이 되어 고향을 등지고 육군에 입대 후 최전방에서 근무 중 월남전에 차출되어, 베트남 전선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보병 전투 병과라 낮에는 헬리콥터로 밀림 산악지역에 투입되어 작전을 하고, 밤이 되면 전방에 크레모아를 매설하고 야간 매복 작전을 하였다. 105밀리의 포가 강 건너 베트콩 진지를 강타하는 포성소리와 정글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M16 총구와 주변 경계에 시선을 집중하였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고향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베트남 전선의 임무를 마치고 겨울에 귀국하였다. 따불백을 메고 집대문을 들어서면서 어머니라고 불렀었다. 어머니는 안방문을 열고 버선발로 눈이 쌓인 마당으로 뛰어 내려오면서 내 새끼 살아서 돌아 왔구나라고 얼싸안으며 울었는데 그것이 엊그제 같다. 정부에서 참전 명예 수당으로 매월 350,000원 지급한다. 나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 용사들에게 최소한 육군 병사 병장 봉급 수준의 수당을 지급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에서 제대 후 공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다. 공기업 재직 시 영광 간척지 쌀과 태양초 고추를 대량 구입해 동력자원부, 공기업 본사, 재경사업소 등에 보급했다. 또한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14억원의 장학 기금을 마련했다. 공기업의 크고 작은 민원해소와 주민 간 갈등 조정 및 복지 증진에 노력했다. 직장내 테니스 동호회 회장으로 봉사 시 영광군, 고창군 지역주민 초청 테니스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테니스 발전과 건전한 스포츠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직장 생활의 절반이상을 고향 영광에서 근무하다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하였다. 공기업에 재직하는 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직원과 회사 및 지역 선후배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도 서해젓갈 가게 앞에 승용차를 주차하여 놓고, 소금 20Kg 1가마와 새우젓을 샀다. 시간이 있어 설도 배수문 앞에서부터 내묘 마을 언덕까지 해변 뚝길 10리길을 걸었다. 해변 뚝길의 왼쪽에는 옥실리, 오동리의 넓은 들판에는 청보리가 넘실되고 있었다. 마을 뒤로는 월암산이 높이 솟아 있다. 오른쪽으로는 서해 바다의 푸른 물결이 변함없이 넘실거린다.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염산 5일장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설도에서 국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었었다. 부모님, 화범아제, 광태매형, 동네 어르신들과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광주로 학교 다닐때 아버지는 지게에 식량을 지고, 어머니는 김칫독을 이고 나는 책가방을 들고 수없이 걸었던 해변 뚝길이다.

해변 뚝길이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고, 1Km 마다 8각정을 설치하여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옛날에는 해변에서 짱뚱이와 참게가 나와 갯벌위에서 뛰어 놀았다. 오늘 자세히 보니 그 많던 짱뚱이와 참게는 보이지 않고 갈매기만 바다 위를 날고 있다.

아름다운 옛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고향의 해변 뚝길을 걸으니 행복하다. 어느 시인이 과거는 언제나 행복이요, 고향은 어디나 낙원이라고 했다. 고향을 생각하면 부모님과 옛 추억이 그립고, 삶의 활력이 된다. 내 고향 영광이 더욱더 발전하여 살기 좋고, 행복한 고장이 되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 노을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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