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행정학박사, 국회출입기자포럼 회장

나는 아버지의 외가가 있는 전북 고창군 신림면 부송리 부송마을에서 태어나서 백일을 지나고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영광으로 이사 와서 성장했다. 어머니의 친정, 나의 외갓집이 있는 고창군 부안면(富安面) 사창리 진목마을은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 있는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릴 적, 외삼촌과 외할머니 회갑이나 생일 같은 날에는 하루 전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20km가 훨씬 넘는 먼 길을 걸어서 진목마을을 찾아다닌 추억이 생각난다. 지금은 외할머니도, 외삼촌도, 외숙모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셨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도 애틋한 어린 날의 추억을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출생지 문인들의 단체인 고창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아버지의 고향 영광군 대마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스가 드물고 요금이 부담되어서 10km가 넘는 영광중학교를 걸어서 다니거나, 아버지가 특별히 사주신 삼천리 자전거로 통학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밤낮이 없는 힘든 농사일로 건강이 무너져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서 어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후로 나는 집과 산소 등을 관리하고자 자주 영광에 내려간다. 영광읍에서 대마면까지 가는 영광군내버스 안 앞쪽 전광판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글자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작은 불씨 무시하면 작은 불씨 냅니다’. 누가 참 생각을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그 뜻을 음미해 보니 많은 생각들이 뒤따라오고, 결국 이 칼럼까지 쓰게 되었다. 서울 여의도 면적 몇배, 몇 십배의 산림을 불태워 버리는 산불도 작은 불씨 하나에서 시작된다. 자동차가 불타고 건물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연기에 질식사(窒息死)하는 대형 화재도 작은 불씨 하나에서 시작된다. 소방차가 수십대 출동하고, 물과 소화제(消火劑)를 대량으로 뿌리는 소방 헬기가 수없이 뜨고 내려도 주()불을 며칠 동안 잡지 못하고 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내는 국내·외 무서운 산불 소식도 뉴스를 통해서 접하고 있다.

작은 불씨같은 작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심코 뱉어버린 작은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 작은 글 하나가 자기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실감나는 사례는 요사이 장관 후보자들의 국회 청문회와 언론 취재 보도에서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좌우하고 나아가서 운명을 바꾸어버리는 경우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많다.

글이나 시()에서도 글자 한 자()가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내가 실례로 자주 쓰는 말은 큰 일 할 사람큰 일 날 사람이다. ‘로 바꾸면 그 뜻은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된다.

성경에서도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昌大)하리라고 한 것은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티끌 모아 태산(진합태산, 塵合泰山), 작은 것이 쌓여서 큰 것이 된다는 적소성대(積小成大),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도 같은 말이다. 시작이 중요하고, 그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도 미세한 것, 상세한 것, 작은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 되었건, 나쁜 일이 되었건 작은 처음, 작은 출발, 작은 시작에서 시작된다. 모든 일에는 앞서 나타나는 작은 징조(徵兆, omen, sign)가 있다. 좋지 않은 기미(機微), 낌새, 싹수, 조짐, 전조(前兆)를 잘 모르고 무시하고 외면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과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다.

우리 건강에서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 몸은 작은 신호와 경고를 보낸다. 이 작은 신호를 무시하면 큰 병으로 발전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 속담도 작은 일, 하찮은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큰 코 다친다는 뜻이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은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Lorenz, E. N.)가 사용한 용어이지만 초기 조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에서도 여린 새싹, 작은 샛노란 움 하나가 자라서 수백년 동안 하늘을 덮을듯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된다. 작은 씨앗(씨알) 하나가 수백 개, 수천 개의 큰 개체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천지 대자연의 법칙이다.

작은 것, 사소한 것, 힘이 없는 것, 소외되어 빠진 것, 그늘진 곳, 조용한 소리, 소리 없는 소리 하나도 잘 살피고 잘 관리해 나가는 자상한 마음과 큰 지혜, 성숙한 삶의 태도가 절실히 요청되는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