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어리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방망이 질을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중략)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로는 아! 엄마그러면 안 되는 것 이였습니다. 이 시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의 심순덕 시인의 가족 시이다.

심순덕 시인의 표현대로 60대 후반 이상의 농촌의 어머니들이라면 대다수 겪고 살았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현재도 어렵고 힘들게만 살아야 할까! 거슬러 올라가서 해방 이전까지는 노력에 비해 생산량 부족과 양반과 지주들의 수탈 때문에 삶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정부수립 이후에도 왜 우리농촌은 고단한 삶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수많은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농업 농촌의 고령화, 양극화, 이농을 부추겼다고 말을 한다면 그동안 역대정부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하다. 수입농산물이 반입되기 이전에 언제 한번이라도 우리 농산물로 자급자족을 한일이 있었던가?

어떤 해 일부 특정품목이 초과되어 문제된 적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부족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 농업인들은 힘들게 일하고도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곤궁하게 살아왔다. 어머니가 자식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왜 농업인들은 국민들을 위해 고생만하고 살아야 할까? 이런 농업인의 아픈 상처와 고통을 정부는 외면만 하고 있을까? 서두에 말한 심순덕 시인의 시 제목처럼 농민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있을까?

정부정책은 시대적인 상황과 여건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고 다수 국민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농업인이 5% 이하이기에 95%의 소비자 입장이 우선이라면 과거 농업인이 50% 넘게 농업에 종사 할 때는 과연 농업인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뒤돌아 볼 문제이다.

7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농산물 증산 정책이 80년대 농어촌종합대책이 수립되면서 농지 소유한도를 폐지하는 등 규모화를 전제로 한 전업농 육성계획이 추진되었고 정부 주도의 시장보호 정책이 민간주도 시장 개방형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93년 쌀과 소고기를 제외하고 전면 개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쌀만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낸다고 약속했던 그 약속은 어디가고 작년가을 40kg 가마니 당 68,000원에 수매한 조곡이 45,000원에 거래되는 이 황당한 상황을 직면 하면서 우리 농업과 농촌, 농업인은 향후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지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시련에 직면해 있다.

농업, 농촌이 희망이 있고 먹고 살만하다고 판단되었다면 이농에 따른 공동화나 고령화 등의 어려움이 없이 청년이 정착하고 되돌아오는 농촌이 되었으련만 최근 30여년 중에는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다시 거론하지만 이 모든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역대 정부라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고 다음은 정치권, 그다음은 농협도 책임을 벗어날 길이 없을 것 같다. 정부 주도하에 타의에 의해 급조되어 설립된 중앙회와 지역 농·축협.. 중앙회는 옛 농협은행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은행 업무에 치중을 하였고 회원농협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설립취지에 부합한 농산물 생산 유통기반을 확고하게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덧 중앙회 60, 회원농협 대부분은 50년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도시 농협들은 소비지 농협으로써 농산물 유통의 최전방에서 농산물 공급에 사활을 걸어야 함에도 좋은 경영여건 속에서 넘쳐나는 수익금을 무늬만 농업인인 얼마 안 되는 조합원에게 많은 배당을 하는 것이 전부인 줄 착각하고 있고, 임직원 복지향상에 매진함으로써 농협이 농산물 생산량의 20%도 취급하지 못하는 현실이 농산물 유통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임에도 시정 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한편으로 방관하고 있는 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농산물 유통의 앞날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래도 빠른 시점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은 변죽만 울리지 말고 쌀 문제뿐만 아니라 농업농촌 전반적인 문제를 국가적인 큰 틀에서 개선 및 대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정부정책 입안자들은 말로만 식량주권회복, 돌아오는 농촌, 쾌적하고 매력적인 농촌 외치지 마시고 깊이 있는 반성과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농산물 값은 싸야 한다고 밥상물가 타령하시지 말고 세계 10위니 12위니 홍보 보다 경제적 지위에 걸맞게 먹거리도 생산비가 보장되어 적정한 가격이 유지 되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빈틈없이 챙겨주실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린다.

공업화를 통한 공산품 수출 길을 열기위해 농산물 개방을 추진하면서 2004년 유일한 가격지지 정책인 쌀 수매 제도가 폐지되고 직불금 도입을 시도한 정부가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던 변동형직불금 제도를 폐지하고

시장격리로 쌀값안정을 시도한 정부가 농업분야 전반을 괴멸 시킬 수 있는 쌀 문제를 이렇게 방치하고 과연 식량주권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그야말로 탁상공론이 아닐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제라도 각종농산물 생산을 계획생산 체계로 전환하고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살아온 농업인들이 그래도 안심하고 농업에 종사 할 수 있도록 조속한 대안을 마련해 주시길 간절히 기원 드린다.

일부 청년 농 육성과 스마트 팜 영농으로 국민 먹거리 생산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나 지금보다 더 농업 인구가 감소한다면 장래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문제로 발전될 수 있음을 부디 명심하시기 바란다.

핸드폰이나 자동차 등 공산품은 제조회사가 가격결정권을 갖는다. 식당이나 서비스업도 사장이 가격결정권을 갖는다. 하지만 농산물만큼은 농업인에게 가격 결정권이 없다. 자율시장 체제로 확실하게 가도록 하던지 인위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가격을 조절 할 바에는 가격폭락시점에도 정부가 확실하게 나서서 반드시 생산가격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는 농업인들과 국익을 위해서라도 농업인들한테 정부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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