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크기가 45밀리밖에 되지 않는 검은 알갱이가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엄연한 사실로 그것은 인도가 원산지인 후추라는 상록 넝쿨식물의 열매 이야기이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음식을 보존하는 문제였다.

특히 육식을 주로하는 유럽에선 겨울철에 사료를 줄 수 없어 사육하던 동물을 모두 잡아 저장을 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고기를 상하지 않게 저장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고기를 소금에 절여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염장이었지만 염장은 시간이 갈수록 누린내가 심해진다는 문젯점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향신료인 후추였는데 후추는 고기의 누린내도 없애줄뿐더러 방부제 효능도 있어서 고기가 쉽게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기의 맛도 훨씬 좋게 해주었다.

후추를 뿌린 고기맛을 한 번 본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후추 없이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중세 유럽인들에게 후추는 일대 혁명이자 맛의 신세계였다.

검은 황금 후추의 전래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대략 4세기 경이라고 한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소위 스파이루투(Spice Route)를 통해 동방의 비밀스런 장소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나 베이루트에 후추를 가져다 놓으면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전 유럽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무역독점을 위해 그들이 후추를 어디에서 구해 오는지를 극비리에 부쳤음으로 유럽에서 팔리는 후추는 원산지에 비해 100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는 등 어마어마하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유럽에서 후추의 가격이 폭등한 것은 12-3세기 십자군 전쟁을 거쳐 15세기에 오스만 투르크가 후추의 모든 통로를 장악하면서 후추에 엄청난 세금을 매겼으며 비위가 틀리면 아예 후추 교역을 중단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후추가격은 금과 다름 없어서 검은 황금이라고도 불렸는데 후추 한 줌 가격이 신발 장인의 1년 치 임금과 같았으며 농노를 한 명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유럽에서 후추가격이 턱없이 비싸게 거래되었던 것은 부자들의 과시욕도 큰 몫을 했는데 신분을 상징하는 사치품이 되어가면서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후추를 금항아리에 보관을 했다.

지리적 발견으로 이어져

후추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향신로의 원산지인 인도를 찾아 목숨을 건 사람들이 여기 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성공만 한다면 일확천금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에 맨 처음 뛰어든 건 포르투갈의 항해 왕인 엔리케 왕자로 그는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바닷길을 찾기 위해 탐험대를 무려 100여 차례 넘게 대양으로 내보냈다.

그럴 때마다 새로 발견되는 아프리카는 속속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갔으며 마침내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까지 가서 후추를 가져오는데 성공을 하게된다.

포르투갈의 성공에 자극받은 스페인도 본격적인 후추 찾기에 나서 콜럼버스를 인도로 보냈는데 그는 엉뚱하게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원주민이 인도사람인 인디언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16세기 스페인이 후원한 마젤란은 상상 최초로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하며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에서 그들이 원하던 후추를 잔뜩 싣고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 해양강국으로 떠오르던 네덜란드는 17세기에 동인도회사를 차리면서 후추를 대거 유럽으로 들여오게 되는데 얼마나 많이 들여왔던지 유럽에서 후추의 가격이 폭락을 하였다.

그럼에도 이에 질세라 벨기에 ,프랑스, 영국이 차례로 국운을 걸고 후추 쟁탈전에 뛰어들었으며 그럴 때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 발견되어 후추생산기지가 되었으며 동시에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렇듯 유럽인들의 후추에 대한 열망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유발해 지리적 발견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던 유럽은 지구상 모든 대륙에서 가장 먼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렇듯 45밀리밖에 안되는 이 작은 열매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 했던 것이다.

요즘 손톱만한 크기의 반도체로 인해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을 지켜보면서 긍정보다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 반도체의 노예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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