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혈(王子穴)의 전설

영광군 법성면 화천리 후장동(後場洞) 마을에 전후회(田後悔)라는 한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한 부부로 소문 난 후회네는 후장동 마을 뒤의 산 밭을 열심히 파 일구어 어렵게 생활하였으나 내외가 매우 금실 좋았다. 다만 자식이 없었지만 아직은 젊은 부부인지라 걱정이 없었다.

어느 여름날, 그날도 부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김을 매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한참 동안 서서 산세를 살피고 난 후 후회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이 보오. 목마른데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없겠소?”

하고 물을 청했다. 후회는 아내에게

여보, 우리는 가난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넉넉히 못 하는 형편인데 스님께서 물을 청하시니 당신이 얼른 샘에 가서 물 한 동이 길러오구려.”

하고 말하였다. 일손을 놓은 아내는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 샘에서 물을 길어와 스님에게 공손히 권했다. 스님은 세상 사람들이 중을 생각하기를 목탁이나 치며 구걸하는 때깔 중으로 여기고 천시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아낙이 저 산밑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와서 대접하는 것을 보고 물을 맛있게 마신 후,

물 잘 마셨소이다. 내 보아하니 부부가 금실은 좋은데 아직 아이가 없구려. 지금 내가 앉아 물을 마신 이 자리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니 내 말을 허투루 여기지 말고 꼭 이 자리에 묘를 쓰도록 하시오.”

일러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전후회 부부는 이튿날 스님이 일러준 곳에 부친 묘를 이장하였다. 묘를 쓴지 꼭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 아기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버릇이 있었다. 보통 아기들은 혼자 놔두면 울고 사람이 보아주면 울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이 아기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울고 혼자 놔두면 울지 안았다. 가뜩이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아기를 혼자 놔두고 부부가 밖에 나가 일해야 하는 형편인지라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고 아기 혼자 놔두고도 걱정 없이 일을 나갔다. 그러나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아무리 혼자 놔두면 울지 않는 아기지만 일을 나가는 부모 마음은 아기가 걱정되기 마련인지라 이웃집 할머니에게

우리 아기 저 혼자 잘 노나 한 번씩 들여다 봐 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이웃집 할머니는 부부가 일 나간 지 한참 후에 아기가 배고파 잠이 깨어 울 때가 되었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어 살그머니 다가가 아기가 아직도 잠만 자고 있나 하고 몰래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방안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은 제힘으로 몸도 뒤집기 어려운 갓난아기가 저 혼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 팔을 들어 올려 기지개를 켜자 금방 늠름한 소년으로 커지는 게 아닌가! 아기가 양어깨를 벌리고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드니 양쪽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기가 윗목에 있는 좁쌀 항아리에서 좁쌀 한 줌을 꺼내어 공중에 휙! 뿌리니 좁쌀 알들이 모두 창칼로 무장한 병사들로 변하였다. 그리고 날개가 돋은 아기는 공중을 날아다니며 병사들을 지휘하니 병사들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며 전쟁놀이 연습을 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본 할머니는 그만 심장이 멎어 기절할 지경으로 충격이 컸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왜구들의 잦은 노략질로 전쟁이라면 아예 겁부터 났다.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젊은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고 할머니도 전쟁통에 아들을 둘이나 잃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도 피난 보따리 이고 지고 굶어가며 고생해 온지라 창칼 들고 싸우는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여 생각조차 싫었다. 놀란 할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전후회 부부를 보자마자 자신이 본 사실을 얘기해 주고는

이보게 큰일 났네. 이 아기는 자라면 앞으로 우리 마을에 큰 재앙을 몰고 올 아기일세. 그러니 미리 액 막음을 해야 하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이 동네가 큰 화를 당하고 말 것이네.”

하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들은 전후회는 자신만의 일이라면 생각해 볼 일이나 마을에 큰 재앙을 가져온다는 말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는 묘를 쓰고 태어난 아기이니 필시 묘와 관계가 깊은 일이라 여기고 스님이 가르쳐 준 묘를 파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동네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묘를 파고 관을 들어내자 파란 김이 솟아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후회가 아버지의 이장을 하고 집에 와 보니 아기는 이미 죽어있어 후회 부부가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풍수들은 이 자리를 왕자혈(王子穴)의 길지라고 한다.

그 후 이 밭과 산을 김씨가 매입하여 선조의 묘를 썼는데 비록 명당의 혈 기운은 빠져나갔으나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혈기가 남아있었던지 이 자리에 묘를 쓴 김씨 집안 자손들이 크게 성공하였는데 이는 명당 왕자혈의 발복을 받은 것이라고 하며 대 길지는 임자가 따로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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