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출생 신분(21)-혜능

혜능의 부친은 조정의 관리였다가 나중에는 보통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혜능의 나이 세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매, 혜능은 모친에 의해 길러졌다. 고아와 과부뿐인 가정은 매우 가난하고도 쓸쓸하였다.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아야 했던 혜능은 책 읽을 돈이 없어 글자를 알지 못하였다.

스물네 살 되던 해 어느 날, 그는 나무를 사 주는 지체 높은 집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혜능은 그 방으로 뛰어 들어가 그 책에 대해 물었다.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그 집 주인은 황망 중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이것은 금강경(金剛經, 불교경전)인데, 홍인선사가 지금 황매산의 동선사에서 이걸 강해하고 있다네.” “저 역시 무척 배우고 싶지만, 늙은 어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내가 자네의 노모를 봉양하겠네.”

뜻밖의 도움을 받은 혜능은 30여 일 동안 걸어서 동선사로 향했다. 다짜고짜 제자로 받아들여달라고 하는 혜능에게 홍인대사가 물었다. “영남은 오랑캐가 사는 곳이거늘, 그 곳 사람이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 이에 혜능은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에는 남북이 있을 리 없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홍인대사(불교 선종의 제5대조)는 그가 큰 그릇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곧 행자(行者), 즉 불교 수행자로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혜능은 절간 옆에 붙어있는 작은방에서 나무를 쪼개고 방아 찧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홍인대사의 고민은 과연 누구에게 선종의 지도권을 물려줄 것인가였다. 어느 날, 대사는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은 다음, 한 수의 게어(偈語, 불교의 진리를 전할 때, 간단한 몇 마디 말)를 짓도록 하였다. 그러자 가장 뛰어난 제자라 모두가 인정하던 신수 법사는 즉시 게어를 지어 스승에게 자신의 지혜를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 후계자 자리를 탐내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두려웠다. 망설이던 그는 아무도 몰래 써 두었던 게어를 선사의 방 앞 벽에 붙여놓았다.

다음날 아침에 홍인대사가 이를 본 다음, 제자들에게 그 게어를 향하여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날 저녁에 신수를 따로 방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아직도 이 게어는 선()의 최고 경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달리 방법도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는 절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외우도록 하였다. 그때 마침 절 안의 방앗간 쪽에서 걸어오던 한 행자가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가 느낀 바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생각을 대신 쓰게 하여 이것을 벽에 붙였다.

이에 여러 사람이 와서 보고는 방앗간의 행자가 어떻게 이 정도의 게어를 쓸 수 있었을까?’ 하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홍인 대사 역시 이 글을 보고, 마음속의 놀라움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게어를 지워버린 다음,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이다.”고 하였다. 이에 그 자리에 있던 신도들이 실망한 채 모두 흩어져 가버렸다. 이튿날 저녁, 홍인대사는 곧 그 행자를 불러 비밀리에 의발(衣鉢, 겉옷과 밥그릇. 지도권의 상징)을 건네주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중국 선종의 6대조가 되었소.”

이리하여 방앗간에서 일하던 혜능(638-713)은 중국 불교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6대조가 되었다. 후세에 신수의 계통을 북종선(北宗禪), 혜능의 계통을 남종선(南宗禪)이라고 하였는데, 번성한 쪽은 오히려 남종선이었다.(,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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