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이제 더 이상 동생의 죽음에만 얽매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사후 수습을 하는 동안 아기는 아직도 병원의 신생아실에서 보호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모의 숨결을 제대로 한 번 느껴보지도 못한 채 밤마다 혼자서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기를 생각하니 다시 또다시 목울대가 끓어오르며 마음이 다급해졌다.

병원에서는 당장 아기를 데려가지 않으면 영아 처리를 하겠다 며 날마다 전화를 해왔다.

아이의 처리 문제를 놓고 나의 일곱 형제들이 의논을 하는 동안,

아이의 장래를 위해선 국가 보호 시설로 보내거나 입양을 원하는 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혼자 사는 내가 정을 다해 친자식처럼 키울테니 나에게 보내 달라...”는 등 주변으로부터 여러 가지 충고와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핏줄인데 절대 남에게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이 듣고만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할 이야기 다 하셨으면 저도 한 마디 할께요

우리 형제 모두가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은 제법 비장하기까지 했다.

고모님들이나 삼촌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저는 이미 큰 고모의 장례 때부터 제 딸로 키우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혼자 직장 다니며 어떻게 키우겠다는 것인지 염려하시는 마 음들도 다 알아요. 그러나 지금까지도 아들 하나 딸 둘 낳아서 남 못지않게 잘 키워내고 있잖아요

단호하게 말을 마친 아내의 표정은 밝고 환했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자 예기치 않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노모께서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당신의 딸을 죽게 만든 그 아이를 결코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의 큰아들인 나의 아이들 키우기도 벅찬데 또 그 아이까지 어떻게 키울 것인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이 이해도 되지만 한 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을테니 너희들 알아서 해라

어머니의 뜻은 완고했다.

그러나 그런 걸림돌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데려오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나의 호적에 출생 신고를 하려면 여러 가지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의 유일한 친권자인 내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야 했고, 입양 기관의 우리 가정에 대한 실태 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허가 조치가 필요했다.

나주에 있는 이화원이란 시설을 통해 여러 가지 복잡한 입양 절차를 마무리 했다.

모든 일 처리가 끝나고 이제 내일이면 아기를 데리러 가는 날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내는 아들과 두 딸들을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내일이면 병원에 있는 아기를 우리 집으로 데려 온다.

너희들 큰 고모가 낳은 아이지만 이제부터는 너희와 똑 같은 엄마 아빠의 딸이고 너희 친동생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너희가 반대하면 없었던 일로 하마

에이 엄마 없었던 일로 하다니 말도 안 돼요 빨리 데려 오세요 보고 싶어요

3인 아들 녀석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직 철이 안든 줄만 알았던 두 딸들도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잘 돌보며 키울게요라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민혁 엄마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당신 지금 무순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지금까지 당신은 딴 생각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사실 난 그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데 대한 자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마음을 확인해보고도 싶었다.

그래서 건넨 말이었는데 아내의 뜻이 확고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래도 난 그 고마운 마음을 내색 하지 않았다.

동생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분신을 통해 내게 사랑과 감사라는 고귀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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