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일 년에 한 번이나 터질만한 국가적 사건 사고가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대통령실 도청이다. 문제는 피해자인 한국과 가해자인 미국의 입장이 반대라는 것이다. 미국이 부인하고 우리는 항의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오히려 미국은 인정하고 한국은 사실과 전혀 다르고 조작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방문을 통한 현 정부의 외교 방향을 보면 이해가 간다. 동맹국에 대한 배려심이다. 가해자인 일본을 우리가 품어주고 물 반 잔이라도 먼저 채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이 채워야 할 물 반 잔은 없었다. 오히려 그 물마저 잽싸게 마셔버리고 다시 잔을 내밀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독도가 영속적인 일본 영토로 표기가 되고 강제노역은 조선 노동자의 참여로 바뀌어 실렸다. 국내의 외교 전문가는 대부분 예상을 했던 결과였지만 현 정부만 몰랐거나 무시했다. 다시 엊그제는 일본의 외무청에서 독도는 우리 땅, 불법 점거라는 공식 발표를 했다. 외교는 기브 엔 테이크라는 공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야말로 주고받는 것이지 일단 주고 결과는 선처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받는 것은 최대, 주는 것은 최소라는 게 외교의 기본 공식이다. 외교에서 의리를 바라는 건 무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이번 도청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레거시 언론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서 중요 기사로 다루었고 미국 정부에서도 이미 인정을 한 사건을 우리 정부에선 적극 부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과연 현 정부에겐 국민이 있긴 있는 것일까. 동맹이란 이름으로 덮으려는 사안들에 얹힌 이익이 국민의 기본 권리를 무시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배려는 항상 동맹국이 먼저였고 자국민의 인권과 알 권리는 뒷전이었다. 위안부가 그랬고 강제 징용자가 그랬으며 나라를 일본에 넘긴 매국노에 대한 관용이 그랬다. 특히 이번 도청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통령실은 도청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며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 행위다.”고 말했고, 안보 1차장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미국 측에 우리 입장을 어떻게 전달할 거냐는 기자 질문에 할 게 없다. 위조한 것이니까라고 답변했다. 간단히 말해 도청은 거짓이고 조작한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엔 단순한 의문이 따른다. 누가, ? 도청 사건을 만들고 조작을 한 것일까. 미국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인정을 하고, 메이저 신문들은 왜 조작된 기사를 중요 기사로 올렸을까. 기이한 일이다. 한국 정부에 중요한 것은 오직 한미동맹이지만 정작 당사국인 미국은 동맹의 바닥에 불신의 자락을 깔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일본에게는 퍼주기 짝사랑으로 당했지만 미국에겐 스스로 뺨 때리기 형벌로 구애를 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민족의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청을 도청이라 하지 못하고 감청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 대신하는 모습은 비열하다 못해 안타깝다. 왜 항의를 못 하는 것일까. 이해가 안 되는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미국의 엄한 규제하에 있던 박정희 군사 정권에서도 도청은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강하게 항의를 했고 심지어 주한 미군을 접수해 버리라는 분노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보도 역시 뉴욕타임스였다. 문제는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면서 이미 예견이 되었지만, 현장 인부들의 신원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거져 나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일반인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노출된 대통령의 행보에서 나타난 염려 역시 국가의 안보 문제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이고 기관이다. 개인이 아니다. 자국민보다 동맹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가 되면, 개인이 아닌 국민의 혹은 국가의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염려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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