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채비둠벙과 베락바우

영광군 홍농읍 동쪽에 위치한 덕림산 정상은 마치 둥그런 쪽박을 엎어놓은 모양이며 산봉우리가 넓어서 산기슭 마을 사람들이 이 봉우리 정상에서 산 놀이를 하였으나 현재는 헬기장이다. <둥굴산>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타고 서쪽 골짜기로 내려가면 덕림정사를 지나 풍암마을에 이르고 남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오면 둥굴재인데 이 둥굴재 주변은 작은 마을이 들어앉을 만큼 매우 넓다. 둥굴재 정상에서 서쪽 가파른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바위는 위가 평평하여 올라가면 예닐곱 명이 쉴 수 있을 만큼 넓다. 이 바위는 정확히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벼락을 맞아 갈라졌다고 한다. 이 베락바우 (벼락 바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드넓게 트인 칠산바다가 한눈에 보여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베락바우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명지동에 이르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한새밭 등을 지나 한현마을에 이른다.

원래 산등성이는 맥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베락바우로부터 가파르게 내려와 산 등보다는 골짜기에 가운 지형은 아래에서 뭉쳐 한새밭 등을 이루고 한현과 신장리의 맥으로 이어진다. 이 한새밭 등은 베락바우로부터 이곳까지 가파르게 내려오기 때문에 베락바우에서 돌을 굴리면 한새밭까지 굴러와서 한새밭 북쪽 풍암마을 쪽 골짜기는 바위와 돌과 진흙으로 엉겨 돌 아닌 곳을 밟으면 발이 진흙 속에 빠지기도 한다. 이 골짜기는 음침하고 구렁이와 뱀이 많이 우글거려 독새(독사) 골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여겼다. 하는 수 없이 이 골짜기를 지날 때는 작대기로 앞을 두들기며 뱀을 쫓고 난 후에 지나갔다. 이 한새밭 등 북쪽 골짜기에 있는 연못이 바로 도채비 둠벙 (도깨비 연못)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이 연못에 이무기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비만 오는 날이면 도채비로 변신하여 처녀들을 잡아먹었는데 처녀 1,000명을 잡아먹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수 있기에 처녀만 보면 잡아먹고 베락바우 위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 처녀 999명을 잡아먹고 한 명만 채우면 용이 될 판인데 근처 마을에는 처녀가 없어 고민하던 중에 한현마을의 양씨에게 고명딸이 있었으나 아직 처녀가 못되어 처녀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양씨는 자식이 없다가 늦게 여식을 낳고 아내가 죽어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길렀는데 딸이 일곱 살이 되자 양씨는 원인을 알 수 알 수 없는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양효녀가 동냥도 하고 남의 집 잔심부름도 하여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양효녀가 열네 살 처녀가 된 경칩 일이 되자 이무기는

옳지, 이제 기회가 왔다. 이제 이 처녀만 잡아먹으면 나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하고 춤을 추며 도채비로 변신하여 양효녀를 잡아다 베락바우 아래에 묶어놓고 바위 위에 올라가 처녀 한 번 쳐다보고 혀를 널름거리며 춤을 추고 또 한 번 쳐다보고

허 고년 참 만나게도 생겼다.”

혀를 널름거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춤을 추었다. 양효녀는 자신이 잡아먹히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늘에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제발 저를 살려주옵소서. 제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앓고 계신 아버지를 혼자 두고 저는 죽을 수가 없나이다. 아버지의 병이 나으실 때까지만이라도 제발 제 목숨을 잇게 하여주옵소서.”

하고 간절히 하느님께 빌었다. 도채비가 처녀를 아홉 번 쳐다보고 입맛 다신 후 이제 열 번째에는 잡아먹을 순간이다.

도채비가 베락바우 위에서 긴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처녀를 잡으려고 손을 벋는 순간,

우르르 쾅!”

우렛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번개가 베락바우 위의 도채비를 향해 내리쳤다.

천둥소리와 번갯불에 놀라 기절한 양효녀가 한참 만에 정신이 돌아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살펴보니 도채비는 번갯불에 타서 재만 남아 바람에 흩어져버리고 베락바우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양효녀는 퍼뜩 아버지가 생각나서 급히 둥굴재 아래로 굴러 내려와 집 앞에 이르러

아버지!”

하고 부르며 마당에 들어서니 지금까지 칠 년 동안을 방에 누워 꼼짝도 못 하시던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오며

나는 천둥소리가 하도 요란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바람에 깨어보니 네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고 딸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그 뒤 삼 년 후에 양효녀는 한 마을 김씨 총각에게 시집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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