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고집(2)-아들을 사형받도록 한 복돈

묵가의 시조인 묵자(墨子, 기원전 5세기)나를 사랑하듯이 남도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과 평화주의, 절약을 주장했다. 말년에 학원을 세우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철저한 규율로 조직을 다스려나갔다. 얼마나 명령 체계가 잘 세워졌는지는 묵가 집단의 우두머리이자 묵자의 뒤를 이을 지도자 복돈이란 사람의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 늘그막에 얻은 복돈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일이다. 비록 죽을 죄를 저질렀으되, ()나라의 혜왕(惠王)은 복돈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선생은 나이도 많고 또 다른 아들이 없으시니, 과인이 이미 형리에게 아들을 처형하지 말도록 조처를 취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런 제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복돈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할 줄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왕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왕이시여! 모름지기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해친 자는 형벌을 받는 것이 묵가의 법입니다. 이는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릇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大義)입니다. 왕께서 비록 제 자식을 사면하셔서 처형하지 않도록 하셨더라도, 저로서는 묵자의 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왕의 사면 방침을 거절하면서까지 자기 아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물론 당시 묵가 조직에는 나라의 법률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군주가 용서해주더라도 묵가의 기율이 허락하지 않으면, 최고 우두머리인 거자(鉅子)의 아들마저 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과연 우리는 복돈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묵가의 규약을 들먹이며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의 행동이 과연 정의로운것인지, 아니면 인간성을 무시한 잔인하고 악독한행동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본인이 아들을 살리고 싶어도 규약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이 사면하겠다는 말도 했으니, 사람들을 설득하여 살리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가의 경전이랄 수 있는논어에는 이와 정반대의 스토리가 나온다. 초나라 변방 지역인 섭현(葉縣)의 태수였던 심제량이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무리에 몸소 바름을 실천한 이가 있으니,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아비가 훔쳤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우리 무리의 바름은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숨겨줍니다. 바름은 그 안에 있습니다.”

맹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임금(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이 천자로(天子, 중국의 통치자)로 있을 때, 만약 순임금의 아비인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사법 담당자인 고요는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이랬다. “고요는 법을 집행하기 위해 고수를 잡으러 나섰을 것이고, 순임금은 천자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아비를 업고 외딴 바닷가로 달아나 죽을 때까지 즐거이 살면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맹자, 진심편 상.)

두 상황만 놓고 보면, 유가는 매우 인간적인 정이 넘치는 그룹으로, 묵가는 아주 잔인무도한 집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천한 신분 출신들로 구성되어 세습귀족 중심의 세상을 뒤집어 엎어보겠다고 일어선 묵가의 입장에서, 유가처럼 점잖은 윤리는 허용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저서 고집불통 철학자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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