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오래전 영광군에 군립도서관이 지어졌다. 19944월에 준공하고 6월에 개관했으니 만 29년 전이다. 당시 건립계획이 발표되고 가장 말이 많았던 게 장소 문제였다. 영광초등학교 뒤 관람산으로 오르는 언덕배기에 군립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소문에 의견이 갈렸다. 결과는 독서는 조용한 곳에서라는 주장이 먹혔고 그렇게 조용한곳으로 도서관이 들어섰다. 문제는 이 주장에는 도서관을 정작 이용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여론을 주도하던 층은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었고, 이들의 머릿속엔 산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하던 과거형 기억이 가득했을 것이다.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해야 하는 학생들은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조용한 도서관을 포기했고, 성인은 자동차라도 있지 않으면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교육청의 공공도서관이 학생들로 가득 찼고 중심 도서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오래가진 않았다. 공공도서관 역시 조용한 성산 중턱 한전 터 옆으로 옮겨버렸다. 역시 아이들이 걸어서 올라다니기엔 힘든 곳이다. 예술의 전당을 이곳으로 끌어 올리고 소극장과 문화원 등의 시설이 이곳으로 옮겨왔지만, 접근성까지 좋아진 건 아니다. 공공도서관은 학생과 아동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을 동원하고 개발하면서 그나마 운영을 하고 있지만 왜 이렇게 힘든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영광문화예술의 전당은 그나마 공연장이기 때문에 유명 연예인을 초청해서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지역 문화예술인이 벌이는 공연 잔치는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문화원 건물 앞에 위치한 가건물 형식의 미술전시실은 왜 있는지 존재 자체가 의문이다. 좁아서 규모 있는 개인전도 치르기 힘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 올라와 주는 관객은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전시를 직접 치르는 당사자만의 고충으로 남기 마련이다. 과거 나주에 예술회관이 지어졌을 때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었다. 차량을 이용해야만 하는 외곽에 지어진 예술회관으로 인해 전시장은 항상 관계자의 독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두어 번 전시를 했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내 식구 말고는 없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영광 공무원과 의회 일부 관계인은 이를 전시 작가의 문제로 돌렸다. 시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전시가 작가의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통감한다. 내가 피카소가 아니고 김환기가 아님을 통감한다. 그랬으면 시민의 관심이 몰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작은 고향에서 추구하는 건 군민과 어우러지는 작은 예술의 향연이다. 접근성을 무시한 문화시설이 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정해지는지 정말 의문이다. 종류별로 200회 이상을 기획하고 각종 전시를 직접 했지만, 정작 최고의 당사자인 내 의견을 물어본 경우는 없었다. 최근 불거진 군립박물관 건립계획 역시 신문을 보고 알았다. 전시실을 비롯한 체험관과 역사, 종교관까지 아우르는 시설이니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접근성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화 불모지인 영광군에 최초로 세워지는 대형 문화시설이 곧올재로 입지가 굳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문화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 전남이고 전남에서도 영광군은 최하위권이다. 문화와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군정 결정권자 혹은 여론 조성자들의 이기주의와 고집이 영광군을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히 재고해 봐야 한다. 대중문화는 대중 속에서만 꽃을 피운다는 건 진리다. 그래서 정작 전시와 연구 발표 등의 당사자는 접근성을 최고 우선으로 삼기 마련이다. 물론 용지 매입 문제가 없는 군유지가 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2의 산중문화시설은 피해야 한다. 군세와 비교하면 너무 뒤떨어진 영광군에 문화 기반시설이 들어서는 건 대환영이지만 곧올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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