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당 이흥규의 고향 마을의 전설 기행

불교에서 미륵은 현재는 보살이지만 다음 세상에 부처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미래의 부처이다. 불교 교리에 따르면 용화수 아래에서 고타마 붓다가 제도하지 못한 모든 중생을 제도할 부처로 수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륵보살 신앙은 미륵보살이 후세에 미륵불(彌勒佛)로 출현하여 세상을 구원한다는 신앙이다. 따라서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 사람들은 유토피아인 <미륵불 세상>의 현세로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일종의 구세주로 미륵이 이루는 세상은 오곡이 풍성한 평화로운 세계일 것으로 기대하였으며 이는 농경 민족적 관념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미래의 유토피아를 염원하는 미륵 신앙이 영광군에서도 꽃피웠으니 그곳이 곧 군서면의 미륵당 전설이다. 영광군 군서면 남죽리는 고려 중엽 때까지는 낮은 곳은 바다였고 육지는 산이고 숲이었다. 게다가 산과 바다가 맞닿은 곳은 가파른 경사지여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 현재의 영광읍과 접경을 이루는 가까운 곳이지만 사람들이 정착하지 않아서 오지였을 뿐 아니라 행인들도 다니기를 꺼렸다고 한다.

지금부터 약 700여 년 전 고려 원종 때에 진주정씨 정선비가 산천을 구경하며 유람하던 중에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에 이르러 양지 언덕에 앉아 산세를 살피다가 피곤하여 언뜻 낮잠이 들었다. 그런데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언덕 바로 아래 바닷가 웅덩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빙글빙글 맴돌고 있지 않은가. 선비가 물속으로 들어가 웅덩이에서 거북이를 꺼내어 놓아주자 거북이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목을 길게 늘어뜨려 한 곳을 가리키더니 바다로 들어가 헤엄쳐 사라졌다. 정선비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정선비는 대낮에 웬 남가일몽(南柯一夢)인가 하고 무심 코자 하였으나 꿈이 하도 실제처럼 생생하여 꿈에 거북이가 가리킨 곳으로 가서 물속에 손을 넣어 더듬어보니 커다란 돌이 손에 잡혔다.

정선비는 겉옷을 벗고 들어가 온 힘을 다해서 돌을 들어 올려 꺼내놓고 보니 불상(佛像)이었다. 정선비는 이 일은 예삿일이 아니니 필시 부처님께서 이곳에 부처를 모시고 법을 지키며 살라는 계시를 주신 것으로 여겨 산봉우리에 집을 짓고 불상을 깨끗이 씻어 안에 모시고 미륵당(彌勒堂)이라 불렀다. 그리고 부처님이 자신에게 정착할 곳을 일러준 것이라 여기고 미륵당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며 험한 지세의 순화와 앞으로 이곳에 찾아와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빌었더니 차차 물이 빠지고 살 터가 열렸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마을이 점점 커지게 되고 미륵당에서 미륵에게 복을 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정성스럽게 모신 후부터 이 마을에는 재앙이 없고 집마다 화평하여 복락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미륵 당에 들러 여행 중에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원이 성취되기를 빌었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 자식이 없는 사람이 아들을 점지해주시라고 미륵께 빌고 난 후에 아들을 낳았다고 소문이 난 뒤부터는 자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소원을 빌어 아들을 낳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절이 아니면서 미륵당이라는 기도처를 지어 불상을 모신 특이한 곳으로 사찰에는 스님이 있으나 이 미륵당에는 스님이 없고 불상만 있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나 또 아무 때나 이곳에 찾아와 자기 스스로 기도를 드리는 자유로운 신앙 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지방마다 큰 고개에는 대체로 서낭당이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돌이나 솔가지를 올려놓고 소원을 빌었는데 이 미륵당은 불교와 서낭당 신앙이 융합된 곳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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