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괜찮으니까 울지 마 2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깊은 고민 속에 빠져 있는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화순에 사는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전국적으로 숲 가꾸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영광에도 몇 개의 사업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라도 하도급을 받아서 같이 일을 하면 너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터이니 어떻게 해서든 하나를 만들어보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반가운 소식이었다.

군청으로 산림조합으로 이리저리 숲 가꾸기 사업과 관련된 기관이나 회사들을 한 군데 빠짐없이 찾아가 나의 실정을 이야기하며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예상 했던 대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단기간에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숲 가꾸기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사업자도 자신이 낙찰받은 그 사업을 쉽게 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진도 쪽에 사무실을 둔 한 업체가 자신들이 낙찰받은 백수읍 대신 백암지구 사업을 직접 할 수 없으니 이곳 업자들을 찾아달라고 한다는 연락이 군청 실무자로부터 왔다.

그렇게 아영이 수술비 마련을 위한 나의 일은 시작되었다.

   아내와 나는 당장 수술을 위한 준비부터 했다.

알아본즉슨 우리나라의 심장병 수술은 서울대 병원,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부천의 세종병원 등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어느 병원을 선택할까?”

고심 끝에 아내와 나는 부천의 세종병원을 선택했다.

부천에 가면 셋째 처형이 살고 있으며 양천구 목동에 사는 처가 쪽 하고도 가까우므로 유사시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병원에 연락하고 수술 날짜를 예약했다.

그 날에 맞춰 아내는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냈다.

 아스팔트에 내리쬐는 7월의 태양은 나무 그늘에 있어도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그 살인적인 더위를 뚫고 아내와 나 그리고 아영이 셋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부천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전문의와 상담을 하고 다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일단 수술이 확정되고 아영이를 병실로 데려가기 위해 환자복을 갈아입히려는 순간 아영이가 발악하며 환자복 입기를 거부했다.

병원과 환자복에 대한 아영이의 어떤 공포증 같은 것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났다.

아영아 니가 앞으로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

간신히 설득을 시켜서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병실로 옮겼다.

그때까지도 아영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나 또한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 “수술시 어떤 일이 발생해도 문제 삼지 않겠다라는 보호자 동의의 글씨가 유령의 날개처럼 내 머리 위에서 춤추고 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저 어린 것이 8시간이나 걸리는 그 큰 수술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또 어쩌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냥은 견딜 수가 없었다.

수술은 어떻게 하는가요?”

가슴뼈를 쪼개고 구멍이 뚫린 심장을 꺼내 봉합을 해야 합니다

집도의의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차라리 물어보지 말 것을!

마취를 시킨 채 얼굴까지 천으로 덮어씌운 아영이를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아내도 울고 있었다. 아영이와 아내를 병원에 남겨둔 채 나는 숲 가꾸기 일을 해야 하므로 영광으로 내려왔다.

조바심에 견딜 수가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아내에게 전화했다.

수십 번의 전화 끝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복실에서 마취가 끝나면 중환자실로 옮겨 최소 보름간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 아영이 수술 잘 되었고, 마취에서도 깨어나서 지금 중환자실로 옮겼으니 걱정하지 말 고 일하면서 다치지 않게 조심해

핸드폰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매우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거의 탈진 상태인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나만큼이나 조바심에 속이 탔던 모양이다.

마취에서 깨어나 힘이 없는 상태에서 아영이는 저의 손을 잡은 채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아내에게 들릴락 말락 한 힘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 이제 괜찮으니까 울지 마

  그로부터 계속해서 걸려오는 아내의 전화는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최소한 보름은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데 아영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빨라서 5일만에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름 후면 퇴원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의사들도 놀랄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 기계톱을 들고 나무를 간벌하는 작업도 힘든 줄을 모르게 했다.

아내의 휴가 기간이 끝나고 나머지 입원기간은 셋째 처형이 병실을 지켜주기로 했다.

  일주일 후 이제 아영이는 퇴원해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딸들까지 모두 데리고 부천으로 향했다.

수술하러 갈 때와 지금 아영이를 데리러 가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도로변의 나무들도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차를 몰고 가는 나의 기분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빠 빨리 가요 민경이가 보고 싶어요

병원에 가서 보니 아영이의 얼굴은 수술하기 전보다 환하게 피어나 있었고 처형하고도 아주 친해져 있었다.

우리를 보는 순간

엄마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니 이내 지 오빠 언니들과 이야기 하면서 활짝 웃었다.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이럴 때 신에게 감사드리는 것일까?

 병원에 입원해서 오래 있으면 반 의사가 된다더니 정말인가보다.

엄마 선경이 언니는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어, 회복이 잘 안 된대

선경이는 열세 살 된 여자아이인데 아영이와 한 날 수술을 받았었다.

그런데 아직도 회복이 안 돼서 중환자실에 있다니 걱정이다 ,

선경이도 빨리 회복되어 집으로 가야 할 텐데.

병원을 나오기 전 아영이는 선경이 언니를 보고 싶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가서 만났다.

언니 난 집으로 가니까 언니도 나처럼 빨리 나아야 해

   민경이가 집으로 온 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잠을 잘 때 그렇게도 심하던 민경의 코골이가 거짓말같이 치료되었고 그 심하던 감기도 수술 후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영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묻는다.

아빠 얼마나 더 써야 해 ?, 내 이야기는 어떻게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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