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펴기 위해서이고, 사람이 그리워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최소한 답장이라도 받아보고자 하는 간절한 기다림 때문인지도 모른다.

칠월의 태양이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지만, 온갖 나무들이 한 줄기 햇살이라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파리들을 피워내서 어우러진 산속은 한낮인데도 어둠침침할 정도로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제법 서늘하기까지 했다.

산속이 아무리 시원하다 해도 80도 이상의 경사진 산을 숨 가쁘게 오르다 보니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3부 능선쯤 올라가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동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마틸다 가 문자로 배달해준 커피의 고마움에 답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실은 그 답장보다도 지금쯤 수술실에서 마취가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아영이와 대기실에서 조바심하고 있을 아내의 근황이 궁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마틸다, 초록이 우거진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 온몸의 땀을 씻어주고 마음마저 시원하게 쓸어내리는구나. 보내준 커피 향은 저 나무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고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단다. 문자메시지로 보내준 커피 고마워, 난 걱정 마 그리고 수술 결과는 어떤지?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나서 우리는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일반적인 등산로를 타고 가는 산행이 아니라 숲 가꾸기 현장의 작업 현황을 둘러보는 터라 때로는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가파른 절벽을 타야 하기도 했다.

때문에 등산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산행이 아닐 수 없었다.

숲의 내용도 등산로 주변의 단아하게 정돈된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숲의 상층부는 이미 활엽수들이 하늘의 정복자처럼 점유하고 있었는데,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 종류만 해도 다섯 종이나 되었다.

거기다 층층나무며 때죽나무, 자귀나무, 사람주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벚나무, 꾸지뽕나무, 엄나무, 옻나무, 개암나무 ……. 등 헤아릴 수 없는 활엽수들의 기세에 눌려 원래 산의 주인 격인 나무였던 토종 소나무들은 거의 말라 죽은 상태였고 그나마 드문드문 살아있는 소나무 들은 이미 주눅이 들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층부에서는 기세 좋은 담쟁이 넝쿨과 청미래 넝쿨 , 칡넝쿨 등이 키 큰 나무들의 온몸을 칭칭 휘감은 채 푸른 하늘과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층에는 큰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어쩌다 한 번씩 그곳까지 배달되는 한 줄기 햇살의 가느다란 줄기를 부여잡고 살아가는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생존해가면서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의 마틸다도 수술이 잘 되고 건강하게 회복되어서 저렇듯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야 할 텐데.”

온몸이 가시넝쿨에 할퀴면서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다시 땀이 온몸을 적시고 갈증이 났다.

물을 마시고 싶은데 물이 없었다.

오전 일정에 쫓기다 보니 미처 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의 다리 쉬엄을 되풀이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정상에 올라서니 탁 트인 칠산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수많은 차가 여유롭게 오가는 백암리 해안도로가 발아래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잘 정돈된 등산로가 좌우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숨을 고르며 마틸다 가 답장을 보냈으리란 생각을 했다 . “어떤 내용으로 보냈을까?”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핸드폰을 꺼내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첩첩 산중에서도 아무 때나, 누구에게든 통화하고 연락을 할 수 있으니 핸드폰은 참으로 편리하고 소중한 물건이다.

어느 소설가가 핸드폰이 애인보다 좋은 이유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첫째, 손안에 쏙 들어가 어디든지 갖고 다닐 수 있다.

둘째, 싫어지면 쉽게 바꿀 수 있고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셋째, 갈수록 똑똑해진다. 카메라, 캠코더, 티브이, 지갑, 계산기, 사전. 등의 기능과 더불어 심심할 틈을 안 준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다.

넷째,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연락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하고 받기 싫으면 안 받는다. 시끄럽게 굴면 진동모드로 바꿔버리거나 꺼버린다.

다섯째, 얼마든지 바람피울 수 있다. 바로 앞에 사람을 앉혀 놓고도 바람을 피울 수 있다.

그렇다. 그래서 핸드폰이 애인보다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그 다섯 가지 이유보다 더 소중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안에 나와의 소중한 인연들과 관계들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마틸다 도 그 안에 있지 않은가?

오른쪽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핸드폰이 잡히질 않는다.

왼쪽 호주머니에도 없다.

상의 호주머니 어디에도 없다.

아차, 어디에 빠뜨린 걸까?”

큰일 났다.

핸드폰이 없으면 마틸다 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는데…….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전율처럼 온몸에 엄습해왔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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