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광복절 윤 대통령의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과는 많이 다른 내용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해방을 맞은 날 할 말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른바 일본과의 이웃을 강조하며 내놓은 파트너 관계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조건의 회복이다. 아직 동반국으로 가는 길이 치워지지 않은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 화해와 동반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의 국가관은 길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중심이 국가와 자국민에게 있지 않은 모습이다. 광복절에 울려 퍼진 일본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자국 피해자의 가슴을 후벼 파기에 충분하다. 35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지독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오히려 가해자의 심중을 헤아려주는 오지랖을 이해할 국민이 있을까. 물론 따지지 않고 믿어주는 35%가 있지만, 이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현 정부 지향성 국민이기에 마음에 깊이 담을 필요는 없다. 당장 일본에 나라를 넘겨도 전 국민의 10%는 적극적으로 찬성할 거라는 믿지 못할 음모론도 떠도는데 35년의 가해자 정도는 품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이제 생존한 사람은 단 네 분이다. 이분들은 아직 배상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일본은 보상이라 우기지만 아직 국가적이 아닌 개인 배상은 분명 해결이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적당한 마무리를 원한다. 그래서 일본을 대신해 할머니들을 회유하고 달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다. 결국, 공탁을 걸었다. 처음에 배상금을 공탁하고 재판으로 간다기에 일본에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자국민인 무력한 할머니들을 상대로 우리 기업에게 배상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 일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도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아직 방류도 하지 않은 바닷물, 그것도 수조의 물고기 배설물 섞인 물을 마시는 퍼포먼스는 황당을 넘은 당황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전어를 먹고, 여당의 의원들은 회를 먹으며 즐겼다. 그리고 여과 없이 지상파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내보냈다. 아직 오염수는 방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상하고 몰라도 이상하다. 어차피 보여주기 위한 이러한 퍼포먼스 자체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류를 덜떨어진 사람이라고 평한다. 이런 상대를 보고 여러 사람 중에 자신만 이상하다고 느끼면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고, 여러 명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데에 있다. 일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행동은 어디서 원인을 찾아야 할까. 지금까지의 행태로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행동과 발언이 향하고 있는 지향점을 향해서 염치와 체면을 포기했다. 모든 국민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도 한 분만 봐주면 성공이라는 공천 지상주의자들이다. 순간의 부끄러움은 내년 5월의 공천으로 충분히 보상될 것이기에 참을 수 있다. 대구시장이 자신의 사과를 자존심으로 덮고자 언급했던 말이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면 수조 물을 마신 여당 의원에겐 공천이라는 사욕을 위한 과하지욕이다. 하지만 이들이 잊은 게 있다. 한신은 과하지욕을 겪으며 유방의 건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지만 결국 유방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사자성어로 말하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뜻을 이루고 나면 강력한 신하는 위협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보편적 가치의 공유와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를 외치고 있을 때 정작 일본의 정치인들은 단체로 전범 합사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었다. 도대체 현 정부 요인들은 역사를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아마 이병도가 스승 쓰다 소키치를 통해 정리한 조선사를 배웠을 것이다. 이완용이 나라를 팔고 이병도가 민족혼을 팔았다면, 윤 대통령은 마지막 남은 민족 자존감마저 팔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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