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武道) 혼을 담은 승부’에 태권도인으로서 삶과 철학 담아
오는 25일 서울 서초 The-K 호텔앤리조트에서 출판기념회

태권도 9단 조영기(85) 영광태권도장 관장이 자신의 태권도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오는 25일 서울시 서초구 The-K 호텔 앤 리조트 컨벤션 3층 그리스탈볼룸에서는 평생을 태권도인으로서 살아온 조영기 관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조 관장은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무도(武道) 혼을 담은 승부로 정하고, 부제로 꿈이 있는 자는 늙어도 낡지 않는다로 명명했다.

조 관장의 자서전은 80여년 태권도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과 철학이 담긴 동시에 태권도 관장(사범)으로서 삶과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

조 관장은 고등학생 시절 무덕관 황기 관장에게 당수도를 배우면서 태권도인의 삶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자신이 직접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며 태권도장을 개관했고, 영광태권도장으로 명명했다. 그의 도장은 현재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영광 태권도체육관으로 66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생을 태권도인으로서 살아왔지만, 다른 태권도인과는 다른 특별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조 관장은 1971KBS 광주방송국 보도국 기자로 채용돼 활동하다가 전두환 정권의 신군부 독재로 발생한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행위로 해임됐다.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른 민주화 운동 참여 기자들과 함께 1988년 복직했고, 1994년 명예퇴직했다.

조 관장은 기자 활동을 접은 후 소위 태권도계 제도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전라남도태권도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자 경력을 인정받아 1995년 세계태권도연맹 홍보위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996년에는 국기원 이사로도 선출되면서 당시 태권도 최고의 기관인 세계태권도 본부 임원이 됐다. 그 시기 조 원로는 정치로도 눈을 돌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 전남도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두 번째 도전인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는 낙선의 아픔을 딛고 도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02년과 2006년 재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하면서 더 이상의 정치활동은 하지 않았다.

2003년 전라남도태권도협회 회장에 선출된 후에는 국기원태권도9단고단자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아 전국적인 9단 모임의 시초를 마련했으며, 2007년에는 태권도진흥법제정촉구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제정을 위해 노력해 20086월 태권도진흥법이 국회에서 의결되는데 일조했다.

또한, 태권도의 첫 정식종목 채택이 이루어진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한국태권도국가대표선수단 임원으로 6차례나 참가했으며,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 국기원 부원장, 태권도진흥재단 이사, 세계태권도연맹 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등으로 태권도 중앙기구로 불리는 유관단체들에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영광 태권도의 오늘을 만든 조영기 관장의 직함은 이처럼 너무나도 다양하다.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 전남태권도협회장, 국기원 부원장, 태권도진흥재단 이사, 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 대회 조직위원장, 국기원 최고단자 회장, 태권도 월드대회 단장, 국기원 최고단 심사위원 등은 태권도에서만 맡았던 직책이다.

조 관장은 태권도의 영역을 넘어 전남과 전국의 체육계 거목으로서 지역 체육발전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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