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평소에 역사를 좋아해 제법 많은 사서와 논문 등을 읽었다. 그리고 한국사의 허와 실을 보았다. 뒤틀려도 많이 뒤틀린 한국사에서 느낀 게 민족의 애환이다. 역사가 슬픔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고대사부터 틀어진 민족사를 바로잡을 기회는 많았지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고대사의 왜곡이 현대사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학문의 영역은 학설의 대립이고 이를 증명해가는 과정에서 정설이 성립되어야 한다. 정치가 개입되면 정설은 왜곡이라는 굴레를 쓰고 거짓과 선동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2023년의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서 역사를 먹어치우는 정치를 실감하고 있다. 정치가 민족의 역사까지 먹어치우는 괴물로 변하는 모습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몰염치한 집단이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다. 몰염치와 부도덕의 한계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이념 논란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홍범도 장군 흉상 퇴출 사건은 정치인의 치졸한 각본임이 분명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과거부터 정치인들은 현재의 정치 위기를, 만들어진 여론을 이용한 국민의 다툼과 분열로 모면하곤 했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무기는 이념을 이용한 분열이다. 그래서 30% 중반대의 고정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의 수장이 택한 게 이념 논쟁일 거라는 추정은 합리적 의심이고, 더구나 총선이 코앞이라는 현실까지 더해지면 의심은 더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몰염치를 필수 인성으로 삼는 정치인이라도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하지만 이젠 그 작은 원칙마저 깨졌다. 홍범도 장군을 건드리면서 선을 넘은 것이다. 장군을 모욕하기 위해 그 먼 카자흐스탄에서 여기까지 모셔온 셈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게 영웅이었던 그가 조국으로 돌아와 퇴출의 대상이 되었다. 철거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군대는 제대로 다녀 왔는지, 부동산 투기는 한 건도 안 했는지, 자식의 학교폭력 혹은 불법에 권력 행사는 없었는지 말이다. 평생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며, 전장에서 아내와 자식 두 명을 모두 잃은 독립운동가를, 공산당이라는 시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굴레를 씌워 명예를 훼손하고 흉상까지 퇴출하겠다는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주장대로 공산당 활동이라면 당장 남로당 활동으로 법정에 섰던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대한민국에서 모든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 그리고 백선엽은 현충원에서 퇴거시켜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명암이 있으며 옳고 그름이 양존 하기 마련이다. 큰 그림으로 판단을 하고 기록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홍 장군은 1962년 당시 국가 최고재건 회의 의장 박정희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고 문 정부에서도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그리고 박정희와 백선엽의 일본군 활동과 공산당 활동을 문제 삼아 실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우리의 아픈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산당의 부정은 현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사즉생 생즉사를 강조하며 동조를 약속했고, 공산당 일당 체재인 베트남을 방문해서는 호찌민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안보 파트너를 강조했다. 그렇게 질색인 공산당과 이념의 전쟁이라는 현재 주장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행보이기에 이해가 힘든 그만의 세계이다. 홍 장군의 소련 공산 경력이 문제가 된다면 아직도 유지 중인 러시아와의 방위산업협력 관계를 먼저 정리함이 맞고, 호찌민 묘역에 참배하고 안보 파트너를 강조했던 행위 또한 해명이 따라야 한다. 이탈리아는 화합을 위해 좌우를 불문하고 조국을 위해 싸웠던 애국지사들의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 정부를 장악한 정부가 80년이 지난 동상을 갑자기 끌어 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상을 끌어 내린 인물들은 과거 나치와 파시스트 계열의 정치인들이었다. 현재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철거 하려는 정치 세력은 누구일까. 정말 궁금하다. 나치와 파시즘이 세상을 농락하던 같은 시기, 태평양에서 창궐했던 게 군국주의라면 묘한 기시감에 소름이 돋는 게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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