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으로 작용하던 게 예의였다. 인성의 바탕을 이루고 인간관계의 축을 이루고 있는 중요 요소이다. 예가 생활 속에서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한 게 21세기 들어서면서인 것 같다. 중요 원인으로 급변한 사회 구조를 꼽기도 한다. 여기에 태어난 환경과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등의 영향은 인성의 구축 베이스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21세기 이전을 그나마 유교적 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던 세대라면 이후의 세대는 갑자기 끈이 떨어진 연처럼 전혀 다른 구조와 생각과 판단으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순간적 시간 이동을 해버린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고전과의 연결점 고리를 거의 끊어놓는 결과를 만들었다. 특히 동양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MZ 세대는 거의 사라졌고, 불과 1세대 차이인 바로 위 부모와도 생각과 세상을 보는 시각의 연결점은 거의 끊어졌다. 쉽게 설명하면 21세기 이전의 인간형과 이후의 인간형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의 개념까지 다르다는 말은 아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역지사지와 배려의 관용도가 줄었다는 의미이다. 밀레니엄 이전의 세대가 인성을 다루는 고전을 중요시하고 공자와 노자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예와 의를 실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가 공식을 외우는 시험을 치르는 실력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성공하는 척도를 만들어가지만 본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하면 예를 알지 못하지만, 예를 잃지는 않았고, 의를 특별히 행하지는 않지만 의를 저버리지는 않는 것이 21세기 이후 세대의 특성이다. 문제는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있다. 서민층에선 아주 얇게 분포되어 있던 사악함이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두터워진다. 여기에 부패한 냄새까지 진동하고 의와 예는 사라지고 만다. 소위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읽히는 고위층으로의 상승은 의와 예가 오히려 장애가 되지만 이들은 일반 국민에게 인과 예를 원한다. 지도층이 탁하면 서민층은 방법이 없다. 처음엔 분노하지만, 지속적인 현상엔 좌절하고 포기한다. 여기서 정치 혐오증이 나타나고 고위관리층과 선출 고위직은 염치와 체면까지 슬며시 내려놓는다. 탐욕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탐욕은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돌린다. 같은 국가에서 같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데 철저히 편을 가르고 자신과 같은 진영이 아니면 빨갱이도 되고 공산당도 된다. 이 논리라면 대한민국은 최근 12년을 빨갱이 혹은 공산당이 대통령이 되었고 이들이 국정을 이끌었다. 소름이 돋는 것은 이 논리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야당 대표가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20일 이상을 하고 있어도 조롱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이미 사악함의 도를 넘었다. 예는 물론 의까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은 최소한의 예를 갖춤에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판은 그마저 잃었다. 목숨을 건 단식이 개인의 이권을 위함이라는 일방적 자기 판단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심지어 잡범들이 위기를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쓰는 자해 단식이라는 일국의 장관 발언은 그야말로 잡범들이나 쓰는 쓰레기 언어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제법 멋진 비유적 발언이었다고 뿌듯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생사를 다투는 전쟁터에서도 승장은 패장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모멸감은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명예를 향한 탐욕으로 눈과 귀가 멀어도 인간이지 않은가. 어떻게 인간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전 정부에서도 나타난 현상이었지만 이번 정부의 국무위원 청문회는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부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국무위원 인력난에 부딪힌 모습이다. 결국, 과거 MB정부의 대표적 부패 인물들을 대거 재 등용하고 있다. 이들에게 남은 건 탐욕이요 없는 건 체면이다. 세상에서 예()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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