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가을인가 싶더니 겨울 문턱이다. 오늘은 상당한 서리가 내렸다. 22일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이었다. 아직 버티고 있는 뜰의 황국은 절개가 가상하지만, 꽃술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요즘 영광에서 자생하는 야생초를 계절별로 정리하면서 느낀 세월의 감성이 차가운 바람의 끝자락을 타고 들어 온다. 10여 년 가까이 지역의 야생화와 풀꽃을 촬영하면서 자생 식물 생태 상황을 개인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데에 뿌듯함도 느끼지만, 어느 지역의 어느 산에서 어느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역시 감출 수 없다. 불갑산을 중심으로 염산의 봉덕산과 군남 일대 등을 돌면서 촬영지와 개화 시기를 기록하고 이름을 붙이다 보면 작은 야생초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특히 불갑산은 영광군에서 자생하는 식물군의 상당 개체가 서식하는 장소다. 참식나무를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지역 자생 식물의 보고이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면 항상 외지에서 들어오는 야생초 사진가들에 의해 밟히고 부대끼며 개체 수는 해마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중요한 식물군은 심지어 불법 채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십 년 뒤엔 사진 파일로만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버리지 못한다. 타 시군의 행정에서 부러운 게 자료이다. 디지털 자료실을 통한 지역의 생태 데이터베이스는 이제 꼭 갖춰야 할 사항이 되었다. 생활에 가장 필요한 요소가 어느 순간부터 환경이 되었고 이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 단체가 만들어지고 저탄소 환경을 위한 국가 간 협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긴급한 상황인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위기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대는 순간이지만 역사는 길다. 오늘의 권력욕에 절어 사는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다가올 장래의 재앙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 지역 역시 정치인이 가장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가 생태이다. 아무런 데이터가 없다. 지역 사진가들이 촬영한 야생 식물만 제대로 엮어도 어느 정도의 분포도가 나오겠지만 비관심 분야라는 실질적 공백은 크다. 영광군에 연구 분야의 생물 중에 대추귀고둥이라는 게 있다. 백수 대신리 밀물과 바닷물이 드나드는 초지대에 서식하는 고둥이다. 원시적인 형태지만 허파가 있어서 공기 호흡하는 특이한 형태로 염분에도 견디는 바다 패류이기도 하다. 원시와 현대를 아우르는 특이성 생물이기에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최근 관찰 기록은 없다. 생태에서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손을 거의 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일례에 불과하다. 영광에만 서식하는 생물군을 찾아내고 서식지를 기본 데이터로 작성해서 자료실에 보관하고 누구든 검색 혹은 열람할 수 있게 함이 맞다. 환경 운동은 거창하지 않다. 자연을 잘 살피고 보호하면 환경 운동이다. 2011년에 영광군 자생 야생화 도감을 발간하면서 느꼈던 씁쓸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부족한 출판비로 인해 준비한 식물 자료의 30% 정도만 책으로 만들었고, 그나마 모든 경비는 우리 주머니를 털었다. 물론 귀함을 모르는 군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식물군들이 어느 산에서 자생하고 있는지는 기록으로 남겼다. 환경과 생태는 특별한 일반인들이 관을 상대로 외치는 주장이 아니다. 당연히 주가 되어야 할 관이 하지 않거나 오히려 개발을 빌미로 파괴를 자행하고 있음을 항의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내미는 주장이 때로는 개발이 직업인 사람에겐 쓸데없는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도 환경의 위기라는 큰 굴레에 속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영광군에 필요한 건 생태계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늦었지만 꼭 해야 하는 이유는 생태가 환경이고 환경이 자연이며 자연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먼저 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부터 정리해보자. 10년 넘게 촬영해 온 자료는 무상 제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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