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중엽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에 이감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살림이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씨가 착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어서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이웃의 어려운 일을 보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하고 흉년에는 가난한 이웃을 도와 마을 사람들의 신뢰도가 높았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목마르게 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이감관이 삽을 들고 논을 둘러보러 가는데 마을 공동 샘가에 솥뚜껑만 한 자라 한 마리가 나와서 샘물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이감관은 이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가뭄이 든 오늘 아침 신령스러운 동물인 자라가 우리 마을 샘에 나타난 것은 우리 마을의 큰 경사입니다. 자라는 옛날부터 장생하는 동물로 <() 천년 구() 만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학은 천년을 살고 거북이는 만년을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 마을에 모여 오순도순 사는 것은 전세의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 간에 형제처럼 사이좋게 살려면 우리 마을 공동으로 자라 수호신을 모시는 제단을 만들어 함께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모든 주민의 가정에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의견이라 의아한 표정들이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화목하게 살려면 마을 단일 신을 모시고 함께 제를 올리며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 마을공동체로 단합하는 좋은 의견이라고 모두 찬성하였다.

그러면 어디다 어떤 방법으로 제단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수복(壽福)을 비는 수호신 제단을 만드는데 소홀히 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마을 뒷등에 제 닷 마지기 밭을 수호신 제단 터로 내놓겠습니다. 마침 고송산 중턱에 자라 모양의 큰 바위가 있으니 이 바위를 옮겨다 제단 위에 모시고 매년 자라가 나타난 3월 그믐날인 오늘 날짜에 제를 올리는 게 좋겠습니다.”

이에 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고송산 중턱에서 바위를 옮겨오고 돌을 모아 제단을 만들어 자라 바위를 올려놓고 동제를 지냈다. 그날 밤 오경부터 비가 내려 못자리마저 말라가던 논에 물이 넘실거려 가뭄으로 모내기 걱정이 태산 같던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었다. 그날 이후부터 이 평금마을은 재앙이 없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점차 살림이 늘어 부자 마을로 변해갔다. 그럴수록 이 마을 사람들은 어려웠던 때를 되새기며 어려운 일이 닥친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해결하여 마을 사람 모두가 친형제처럼 살았다.

어느덧 이감관이 늙어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동제 전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유언하였다.

나는 이제 살 만큼 살고 죽을 날이 눈앞인데 자식이 없으니 내 재산을 모두 평금마을 공동재산으로 기부하는 바이오.”

하고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마을 공동으로 장례를 치르고 동제 전날 이감관님 돌아가신 것은 큰 뜻이 있다고 믿고 매년 동제 지내는 날 이감관의 제사를 함께 지냈다.

몇 해가 지난 뒤, 마을 사람 중에서 우리마을이 이렇게 잘사는 마을이 된 것은 이감관과 자라바위 덕택인데 자라의 머리가 평금천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마을 쪽으로 향하도록 돌려놓으면 더욱 잘사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여 자라 머리를 돌려놓았다. 그러나 자라 머리를 돌려놓은 뒤, 마을이 원인 모를 재앙이 닥쳐오고 앙화(殃禍)가 미치는 가정이 늘어나게 되자 이는 필시 자라 머리를 돌려놓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자라 머리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은 다음부터 마을에 다시 화평과 복락이 찾아 왔다고 전한다. 이 얘기에는 과욕은 재앙을 불러온다는 교훈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이 마을에 존장 격인 신참봉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영험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이감관이 기증한 마을 공동 산에서 소나무를 벌채하여 자라 바위 옆에 이감관의 송덕비를 세웠다. 자라 바위와 송덕비는 평금마을의 상징으로 지금도 제자리에 있으며 삼월 그믐날이면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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