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회갑이 되어서야 철이 든다는 말이 있다. 직장인 대다수가 은퇴하는 나이가 회갑과 맞물려있으니 한편 이해가 간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수익과 노후의 안정을 향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철이 들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갑자기 바뀐 삶의 방식과 시간의 여유에서 갑자기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은 오히려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불식 간에 바뀐 삶의 방식에서 문득 발견한 자신을 이끌어갈 여생 사용 설명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철들게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찾는 계기가 회갑을 전후한 나이라는 말이다.

요즘 불치병에 걸리지 않으면 90세를 거뜬히 산다. 은퇴 후에도 30년을 덤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덤이란 말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의 상위에 가족을 두고 살 수밖에 없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굴레를 벗은 이후의 삶을 덤이라고 한다면 이후 30년의 황금기에 대한 모독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마지막 30년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들어오면 안 되고 철저한 개인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갈 시기라는 뜻이다.

나이는 먹지만 늙지는 말아야 한다. 늙음은 멈춤이고 멈춤은 죽음이다. 사람은 살아서도 죽고 죽어서도 죽는다. 가장 비참한 것은 살아서 죽는 것이다. 대부분 나이를 먹으면 인격이 늘고 점잖아지기 마련이다. 건강상 술자리도 줄고 담배도 끊는다. 육두문자가 오가는 화투판도 슬며시 피해간다. 외출은 줄고 집에서 칩거하며 책을 보거나 뜻이 맞는 소수의 지인과 이따금 만나 담소를 나누고 산책을 즐긴다. 좋은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좁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곧 멈춤이 되는 것이다. 멈춤을 벗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악기를 권한다. 악기는 머리와 마음의 감성적 멈춤을 치료하는 데에 탁월한 효능을 제공한다. 아니면 평소 하고 싶던 분야에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주위의 정년을 앞둔 지인들에게 3년 전부터 취미를 선택해서 시작해보라는 권유를 강하게 하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할 일이 없으니 매일 산에 오르거나 화투판 혹은 술자리를 기웃거리며 나머지 황금의 30년을 허송세월로 마감한다. 가장 왕성하게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나는 요즘 책을 한 권 쓰고 있다. 35년 이상 사진 생활을 하면서 쌓인 시간 조각이 상당히 많아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싶어서다. 물건이 늘어진 방을 정리하듯 이따금 세월을 한 번쯤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특히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정리의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 최근 대마로 귀촌한 60대 친구 두 사람이 붙박이 친구와 함께 그동안의 취미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예와 서각 그리고 우드 버닝인데 이름대로 ‘33색전이다. 은퇴 후에 다시 취직하거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리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인색한 시간의 할당이다. 물론 그런 삶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떻게 살든 자신의 것이다. 다만 60년을 이타적(가족적)으로 살았으니 나머지 삼 분의 일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개인주의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즘 시간이 나면 중용을 읽는다. 자신을 위한 시간의 할당을 위해선 먼저 약간의 깨우침이 필요하다. 대학과 중용은 오히려 지금 필요한 학문이 되었다. 읽고 깨우치고 행하자. 습관의 우물에 갇혀서 일만 하다 죽어가는 삶은, 좁은 닭장에서 계란만 낳다가 죽어가는 암탉과 다를 바 없다. 현인들은 입을 모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처한 현실적인 때를 알고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정치가 국민을 너무 괴롭히고 있는 현실을 보며 자신의 여생이라도 챙겨보자는 의미로 몇 자 적어본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